복원된 1500년 전 가야소녀. 3차원 정밀스캔,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동원해 인골을 실측한 뒤복제뼈를 제작하고 근육과 피부까지 살려냈다.
소녀는 처음엔 ‘22-01’이란 일련번호로 불렸다. 진흙과 뒤엉킨 백골 상태론 나이도, 성별도 짐작할 수 없었다. 수습한 뼈 표본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으로 분석한 결과 420~560년 사이에 매장된 것으로 산출됐다. DNA를 분석하자 XX염색체를 지닌 여성임이 드러났다. 15호 분에는 소녀 외에도 여자 한 명, 남자 두 명이 나란히 매장돼 있었다. 다른 인골이 도굴로 심하게 훼손된 데 반해 ‘22-01’은 거의 완벽히 남아 있었다. X선 촬영 결과 ‘22-01’은 사랑니가 채 나지 않은 채 매장돼 있었고, 팔·다리뼈의 성장판도 닫히기 전의 소녀임이 드러났다. 추정 나이는 약 16세. 출산 경험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뼈의 생체분자를 분석한 결과 소녀는 조·기장·수수보다는 쌀·보리·콩 등을 주로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로선 양호한 식생활임에도 뒤통수 뼈에는 잔 구멍이 퍼진 흔적(다공성 뼈과다증)이 있었다. 가톨릭대 의대 이우영 교수는 “빈혈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강이뼈와 종아리뼈에는 다리를 굽혔다 펴는 동작을 지속적으로 반복한 흔적이 있었다. 위쪽 앞니엔 여러 줄 빗금이 있었다. 앞니로 물거나 끊어내며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충치도 여럿 있었다. 컴퓨터단층촬영(CT)과 3D스캔으로 일일이 뼈를 측정한 뒤 복제한 모형을 해부학적으로 조립한 결과 소녀의 키는 1m51.5㎝였다. 현재의 만 16세 한국 여성과 비교해 하위 5~25%에 속하는 아담한 체구다. 얼굴은 현대인보다 넓고 편평했다. 소녀의 왼쪽 귀에는 금동귀고리가 하나 걸려 있었다. 신분이 낮은 노예나 포로가 아니라 무덤의 주인 곁에서 봉사하다 순장된 인물로 추정된다.
①발굴 당시의 가야 소녀 머리뼈 부분. 왼쪽 귀 옆에 금동귀고리가 보인다. ②치아우식증(충치)이 보인다. ③뒷머리뼈에 나타난 빈혈 흔적.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