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순장 가야 소녀는 16세, 키 152cm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복원된 1500년 전 가야소녀. 3차원 정밀스캔,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동원해 인골을 실측한 뒤복제뼈를 제작하고 근육과 피부까지 살려냈다.

사랑니도 나지 않은 열여섯 소녀가 1500년 전 비화가야(창녕 지역에 있던 가야)의 권력자 인근 무덤에서 발굴됐다. 뼈대에는 외상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누운 상태로 발굴됐다. 독극물을 먹거나 질식사한 직후 얌전히 묻혔다는 뜻이다. 경남 창녕군 송현동 가야고분군 15호 분에서 소녀의 뼈를 비롯한 4명의 인골이 출토된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이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가톨릭대 의대 응용해부연구소, 충청문화재연구원 등이 협력해 1500년 전 가야 소녀의 모습을 되찾았다. 전통 고고학 기법부터 유전학·생화학·물리학·법의인류학 등 첨단과학 연구기법이 총동원됐다.

소녀는 처음엔 ‘22-01’이란 일련번호로 불렸다. 진흙과 뒤엉킨 백골 상태론 나이도, 성별도 짐작할 수 없었다. 수습한 뼈 표본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으로 분석한 결과 420~560년 사이에 매장된 것으로 산출됐다. DNA를 분석하자 XX염색체를 지닌 여성임이 드러났다. 15호 분에는 소녀 외에도 여자 한 명, 남자 두 명이 나란히 매장돼 있었다. 다른 인골이 도굴로 심하게 훼손된 데 반해 ‘22-01’은 거의 완벽히 남아 있었다. X선 촬영 결과 ‘22-01’은 사랑니가 채 나지 않은 채 매장돼 있었고, 팔·다리뼈의 성장판도 닫히기 전의 소녀임이 드러났다. 추정 나이는 약 16세. 출산 경험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뼈의 생체분자를 분석한 결과 소녀는 조·기장·수수보다는 쌀·보리·콩 등을 주로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로선 양호한 식생활임에도 뒤통수 뼈에는 잔 구멍이 퍼진 흔적(다공성 뼈과다증)이 있었다. 가톨릭대 의대 이우영 교수는 “빈혈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강이뼈와 종아리뼈에는 다리를 굽혔다 펴는 동작을 지속적으로 반복한 흔적이 있었다. 위쪽 앞니엔 여러 줄 빗금이 있었다. 앞니로 물거나 끊어내며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충치도 여럿 있었다. 컴퓨터단층촬영(CT)과 3D스캔으로 일일이 뼈를 측정한 뒤 복제한 모형을 해부학적으로 조립한 결과 소녀의 키는 1m51.5㎝였다. 현재의 만 16세 한국 여성과 비교해 하위 5~25%에 속하는 아담한 체구다. 얼굴은 현대인보다 넓고 편평했다. 소녀의 왼쪽 귀에는 금동귀고리가 하나 걸려 있었다. 신분이 낮은 노예나 포로가 아니라 무덤의 주인 곁에서 봉사하다 순장된 인물로 추정된다.

①발굴 당시의 가야 소녀 머리뼈 부분. 왼쪽 귀 옆에 금동귀고리가 보인다. ②치아우식증(충치)이 보인다. ③뒷머리뼈에 나타난 빈혈 흔적.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