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직원 600명 아프간서 철수시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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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카이 에이데 아프가니스탄 특사가 5일(현지시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이 밝힌 직원 일부의 재배치 계획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카불 로이터=뉴시스]


아프가니스탄 내 유엔 직원이 대거 아프간을 떠난다. 날로 커지는 탈레반의 테러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다. 유엔은 5일 아프간 현지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직원 600여 명을 안전한 곳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일부 외신은 이들 대부분이 사실상 아프간을 떠난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대상 인력은 비필수 요원으로 아프간 곳곳에서 재건과 각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유엔 산하기관 소속”이라며 “아프간의 치안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직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유엔은 지난달 28일 수도 카불의 유엔 직원 숙소에서 발생한 테러로 5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 뒤 안전 대책 마련에 부심해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아프간의 안전 상황을 재점검하고 직원을 보호할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재배치냐, 소개냐=유엔은 안전 문제로 일부 직원의 ‘철수’ 방침을 밝히면서도 이러한 조치가 완전히 발을 빼는 ‘소개’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알림 시디크 유엔 아프간대표부 대변인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일부 직원은 아프간 국내에, 나머지는 국외로 일시적으로 재배치된다”며 “아프간에서 25년간 활동한 우리가 이곳을 떠날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유엔은 또 안전한 장소를 찾아 시내 곳곳에서 머물고 있는 직원들을 한곳에 모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아드리안 에드워즈 유엔 대변인도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안전한 거주지를 찾는 동안 직원들이 잠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며 “직원들은 3~4주 이내에 돌아오겠지만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알자지라의 카불 특파원인 제임스 베이는 “600명의 유엔 직원 대부분이 아프간을 떠나는 데다 유엔이 두바이에 새 사무소를 연다고 들었다”며 “이번에 철수하는 유엔 직원의 상당수는 다시 아프간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소개’ 쪽에 무게를 실었다. 유엔이 재배치하겠다고 한 외국인 직원 600여 명은 아프간 유엔 인력의 12% 수준이다. BBC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에는 현지 인력을 포함해 5600명의 유엔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이 중 외국인 직원은 1300여 명이다.

◆아프간 탈출 도미노 시작되나=유엔이 외국인 직원의 일시적 ‘철수’를 결정한 것은 탈레반이 기세를 회복하고 있는 아프간의 상황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아프간 무장 세력이 유엔 직원을 ‘비교적 공격하기 쉬운 목표’로 여기면서 직원들의 희생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지난달 30일 기사에서 “탈레반은 이틀 전 유엔 직원 숙소 테러 당시 그곳의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유엔의 인력 철수는 현지 비정부기구(NGO)의 아프간 탈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더 타임스는 보도했다. 아프간 내 NGO 연합기구인 ACBAR에 따르면 올해 탈레반의 공격으로 민간인 지원 사업을 하는 NGO 관계자 23명이 목숨을 잃는 등 NGO를 대상으로 한 테러도 심각한 수준인 만큼 탈출 러시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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