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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문제] 지하수 고갈로 아이들 씻기지도 못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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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아파트 주민이자 배방면 공수9리 이장인 이종원(왼쪽 두번째)씨와 이한욱(오른쪽 첫번째) 시의원이 마을 주민과 함께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해결방법이 없다는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물 없이 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시와 임대사업자, 주민 모두가 함께 대책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이한욱 아산시의원은 지난달 임시회 시정 질문을 통해 지역구인 배방읍에 있는 한도아파트에 식수공급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며 대책을 요구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식수공급이 안 되는 아파트가 있다니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현장 확인 결과 사실이었다. 1997년 준공된 한도아파트는 922가구가 지하수를 식수 등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인근에 아파트 신축이 잇따르면서 지하수가 고갈되기 시작,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신규아파트는 상수도 시설 의무화로 문제가 없지만 정작 이들 대규모 아파트가 인근의 사막화를 부추기고 있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이나 인근도로 공사 과정에서 수맥이 차단되거나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로 물이 스며 들 틈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영향으로 올 여름 한도아파트는 며칠씩 물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9월에는 저수조 청소를 하느라 물탱크를 모두 비웠다가 다시 채우는 데만 무려 7일이나 걸렸다. 평소 같으면 하루 이틀이면 가능하던 일이다.

여름철 아침, 점심, 저녁 하루 4시간만 제한 급수를 했지만 그나마도 생활용수가 공급이 제대로 안 돼 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최근에도 아이들이 샤워를 하면 부엌에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대책 없다?

상수도시설을 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파트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돈이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한도아파트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대략 4억78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전체 922가구 중 45%가 임대사업자 소유로 돼 있어 더욱 문제다. 상수도시설을 위해서는 당장 이들 임대사업자를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거액을 투자해야 하는 임대사업자들은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 임대사업자가 동의해 준다 해도 관리비조차 제때 내지 못하는 가구가 적지 않은 서민아파트에서 원인자 부담금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따르면 임대사업자가 연체한 관리비와 장기수선충당금 규모만 6800여 만원이 넘는다.

아산시 관계자 역시 “지금 상황으로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원인자 부담금을 지원해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마을 이장인 이종원(49·배방읍 공수9리)씨는 “우리는 법은 잘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물 먹을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다면 문제 아닌가. 지원 근거가 없다면 근거를 만들어서라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게 정부나 시에서 할 일 아닌가”라며 당국의 대책을 촉구했다.

이 보다 급할 순 없다

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산에 지하수를 쓰는 (50가구 이상) 아파트는 모두 11곳 3595가구다. 가구당 구성원을 평균 3명으로 볼 때 1만 명 이상의 아산시민이 식수고갈이나 오염위기에 노출된 셈이다. 당장 이들 아파트가 모두 한도아파트처럼 심각한 식수난을 겪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도심 주변 개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하수 고갈이나 오염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 의원은 “물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이 보다 급한 민원이 있을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전하게 공급해야 하는 것이 정치나 행정 하는 사람들의 책무다. 지원 근거가 없다고 마냥 두고 볼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운식 아산시 상하수도사업소장은 “공동주택에서의 지하수이용에 따른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 법과 제도적 한계로 오늘까지 왔다”며 “주민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 새로운 접근방법이나 대안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지하수개발과 관리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더불어 공동주택 지원조례를 개정하고 임대사업자를 소집해 설득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글=장찬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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