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종 플루 대처, ‘심각’하되 차분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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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부가 신종 플루로 인한 전염병 위기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높였다. 신종 플루가 대유행 양상을 보이는 데다 향후 4~5주 내에 정점에 이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상 초유의 국민 건강 위기를 맞아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여 대처하겠다고 나선 건 바람직한 일이다. 행정안전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되고 각 지자체에도 지역별 대책본부가 꾸려지는 만큼 좀 더 체계적으로 각종 대책이 추진되길 기대한다.

지금까진 부처 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 대책이 혼선을 빚거나 늑장 대응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학생 환자가 급증하는데 보건복지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 뒤늦게야 휴교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교육 현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수능 시험이 코앞인데 환자용 분리 시험실의 감독 교사들에게 이제야 백신을 맞히겠다고 하는 것도 뒷북 행정이 아닐 수 없다. 중앙본부가 교통정리를 잘 해서 다시는 이 같은 잘못이 없어야 할 것이다.

백신 접종과 환자 치료에도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아직까진 국내 사망자가 환자 숫자나 외국 경우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환자가 급증하면 중환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고 중환자가 늘면 사망자도 늘어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책은 백신 접종이다. 하지만 다음 주 초·중·고 학생 접종을 앞두고 의료진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니 정부는 인력 현황부터 꼼꼼히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사망자 발생을 최소화하자면 중환자들을 위한 병상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데도 병상을 못 구해 발을 구르는 환자가 있어서야 되겠는가. 아직 여유가 있다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격리 병상을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대처를 잘해도 국민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가장 우려되는 건 정부의 ‘심각’ 조치를 과민하게 받아들여 과도한 공포심을 품거나 호들갑을 떠는 사태다. 이는 결코 도움이 안 된다. 국민 모두가 건강 관리 잘하고 가벼운 증세가 있을 땐 동네 병원을 바로 찾아 치료를 받으며 일주일은 외출을 삼가는 개인 수칙만 철저히 지켜도 신종 플루 위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