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정상회담과 ‘MB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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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사실 MB처럼 돼라는 그 해석은 절묘한 말장난일 뿐이지만, 정치적 지지 여부에 따라 느낌은 정반대일 것이다. MB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지독한 욕으로 들릴 것이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진심으로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수도 있다.

며칠 동안 재미있는 그 해석을 이리저리 옮기다 보니, 문득 ‘MB처럼’이란 무슨 뜻일까에 생각이 미쳤다. DJ에겐 경륜과 노련함이, 노무현 대통령에게서는 우직과 무모함이 떠오르지만, 정작 MB에게선 뚜렷이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친서민’까지를 넘나드는 행적에서 보이듯 그 자신이 특별한 성향이 없기 때문일까. 건설회사 출신이라는 이력처럼 거창한 이념보다는 오직 성과에만 관심이 있는 탓일까.

어쩌면 ‘MB처럼’은 내용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권 초기부터 ‘실용’이라는 화두를 내걸었던 것일지 모른다. 일은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모든 것은 결과로 평가받는다는 실리 중시의 입장이 ‘MB처럼’의 요체일지 모른다.

난 그래서 최근 흘러나온 정상회담 추진설을 보면서 역시 ‘MB처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정상회담은 실기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DJ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정상회담 기회를 흘려보냈다. 장소가 서울이 아니라 제3국이라는 이유였다. 서울 답방은 김정일 위원장 스스로 약속한 것이었고 여론도 서울이 아니라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DJ는 2차 정상회담이 가져올 성과를 알면서도 국내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만큼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는 멀어졌다. 1차 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최초라는 ‘상징’으로도 충분했지만, 2차는 구체적 실천방안을 논의하는 ‘실질’의 장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초반이었던 2004년 추진 기회를 외면했다. 핵 개발하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은 의미가 없고, 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사이 북한의 핵 개발은 나날이 진전되었고, 이제는 핵 보유국이라고 선언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히려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정상회담을 함으로써 정작 해결해야 할 것은 못 하고 다양한 경협 선물만 주고 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무릇 모든 일이 그렇듯 정상회담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기회를 놓치면 그만큼 문제는 더 어려워지고 비용은 더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적기다. 일부에서는 핵 문제의 해결이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상회담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핵 문제가 해결된 이후라면 총리회담이나 장관급회담으로도 충분하다. 그때라면 어차피 주된 의제는 구체적 협력방안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더욱이 북한 핵 문제는 국제적 현안이지만,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도 있다.

주춤거리는 사이에 북·미 협의가 진전될 우려도 있다. 이미 미국과 북한은 수면 위와 아래에서 접촉을 계속 강화해 오고 있다. 만약 북·미 대화를 통해 핵 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힌다면, 우리는 ‘설거지’만 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마치 1994년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로 우리는 명분도 잃고 돈만 댔던 것처럼. 게다가 우리로서는 북한 핵의 완전 폐기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이지만, 미국은 비확산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마냥 지켜보며 시간 끌 일이 아닌 것이다.

당연히 서울이면 좋지만, 서울이 아니면 어떠랴. 문제는 성과이지 의전이 아니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다시 평양이나 제3국이 정 부담스럽다면 제주나 개성, 금강산도 무방하다. 굳이 2박3일을 자면서 할 필요도 없다. 당일치기나 출퇴근 정상회담도 고려할 수 있다. 어차피 ‘실용’ 정부라고까지 이름 붙이고자 했던 MB 아닌가.

그래서 주문한다. 기회가 왔을 때 정상회담을 추진하라, ‘MB처럼!’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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