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 왜 선선히 물러갔나] 싱겁게 끝난 합당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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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이 자민련과의 합당을 포기했다.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합당 논의는)이제 시작" 이라고 강한 집착을 보였다.

김종필(金鍾泌.JP)총리의 거듭된 합당 불가(不可)입장 표명에 대해서도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말" 이라고 단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총리실쪽에서도 "오늘 DJ와의 회동에서 金총리가 먼저 합당문제를 꺼내지 않을 것" 이라고 예고했다.

때문에 합당을 둘러싼 DJP 담판(談判)은 분명한 윤곽이 잡히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었다.

그러나 오후 6시 시작한 30분간의 회동 뒤 나온 결론은 간단했다. 합당 포기와 총선 때 양당간 협력 두가지였다.

반전(反轉)을 거듭하던 합당 논란은 이렇게 쉽게 막을 내린 것이다. 청와대와 총리실 관계자들 모두 "DJP 담판이 싱겁게 끝났다" 는 반응이었다.그렇게 끝난 데는 金대통령이 합당쪽으로의 집념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JP의 합당 반대 입장이 확고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더 이상 끄는 것은 여권 내부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게 金대통령의 생각" 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이날 오후까지 金총리측의 입장을 타진했으나 金총리가 워낙 완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더구나 金총리가 선문답(禪問答) 의사표시를 해온 과거와 달리 합당 반대를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내놓은 이상 다시 합당쪽으로 몰고가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합당 문제를 쟁점으로 남겨두기에는 "총선 전략을 짜는데 시간이 너무 없다" 는 게 청와대측 분석이었다.

당장 합당 문제에 걸려 신당 창당이 가려지고 있는 것이 부담이다.그렇다고 외부 인사를 영입하면서 공천을 약속하는 등 좀더 진전되면 합당 자체가 새로운 마찰 요인이 될 수 있다. 박준영(朴晙瑩)청와대 대변인도 "열차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다" 고 말했다.

또 자민련 내부뿐 아니라 2여 사이에도 합당 문제를 둘러싸고 마찰이 발생했다. "자칫하다가는 공동정권의 공조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는 우려마저 제기됐다.따라서 金총리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차선(次善)책인 연합공천 등 총선 공조라도 유지하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결국 金대통령은 합당을 포기하고 2여1야의 선거체제 속에 독자적인 선거전략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에 따라 회동에서 DJ는 합당 문제를 먼저 꺼내면서 JP의 의사를 최종 타진하는 것으로 합당 문제와 결별했다.

두 사람은 내년 선거를 "양당이 협력해 공조 속에 치르기로 했다" 고 말했다. 연합공천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朴대변인은 '연합공천' 이란 표현이 아닌 '협력' 이란 표현을 주문했다. 차선책인 연합공천으로 가기 위해서도 양당간에 지분 등 상당한 의견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초 연합공천이 난항을 빚으면서 총선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합당론이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권 일각에 남아 있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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