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것은 털자" 달라진 이회창 총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22일 "우리에게 다소 불리해도 여야 합의로 털 것은 털고 새 세기를 맞겠다" 고 했다.

21일에는 "새해부터는 국민에게 희망주는 정치를 하자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제의한다" 고 말한 바 있다.

19일 여야 총재회담에 대해 金대통령의 대선자금 직접 해명 등의 조건을 걸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변화다.

李총재가 이제 총재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언론장악 문건 국정조사 연내(年內) 실시 하나뿐이다.

그것도 사흘간만 청문회를 열면 된다는 입장이다.

당초 한나라당이 요구한 청문회 기간은 1주일 이상이었다.

李총재가 이처럼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한 측근은 "무엇보다 뉴밀레니엄을 맞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몇몇 당직자들은 "정쟁(政爭)을 지양하는 모습으로 새 천년에 걸맞은 정치적 이미지를 선점하려는 전략" 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여권은 한나라당에 "여야 총재회담을 통한 정쟁종식 공동선언을 하자" 는 제의를 하고 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하지만 총재회담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언론문건 국정조사 문제가 결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李총재는 이것만은 반드시 실시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의 한 특보는 "우리는 모든 것을 양보했다" 며 "이제 여당이 최소한의 성의를 보일 차례" 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회의 태도 역시 완강하다.

협상론자인 박상천(朴相千)원내총무조차 "청문회가 열리면 여야가 공방을 벌일 게 틀림없고, 그 경우 모처럼 조성된 대화정국이 다시 헝클어지게 된다" 며 한나라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국민회의는 국정조사 대신 문화관광위에서 일반안건 처리형식으로 언론문건 문제를 짚고 넘어가거나, 본회의에서 긴급 현안 질의 형태로 마무리짓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미 국정조사특위까지 구성한 상태이므로 다른 방식은 안된다" (李富榮원내총무)는 입장이다.

그래서 여야 내부에서는 다른 방법도 검토 중이다.

예컨대 선거법과 언론문건 국정조사를 묶어 연초 협상으로 돌리고 총재회담부터 갖는 방안 등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점들이 있어 합의가능성은 미지수다.

이상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