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씨 소환] 검찰내부 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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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6일 오후 대검찰청 회의실.

신승남(愼承男)대검 차장과 신광옥(辛光玉)중수부장.이종왕(李鍾旺)수사기획관.수사 검사들이 모여 박주선(朴柱宣)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대한 처리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朴전비서관을 소환해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수사팀과 증거가 불충분하니 좀더 시간을 갖고 보강수사를 하자는 수뇌부의 신중론이 맞선 때문이다.

"당신들 생각이 정 그렇다면 총장께 보고하고 마음대로 하시오. "

결론이 안나자 愼차장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날 하루종일 대검찰청은 술렁거렸다.

검찰총장의 참모들인 대검찰청 부장(검사장)들끼리 모여 문을 닫아건 채 회의를 하고 검사들도 조심스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느냐" 며 우려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윽고 오후 7시 李수사기획관이 "중요한 발표가 있다" 며 대검 청사 별관에 있는 기자실을 찾았다.

그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평소 발언이나 처신에 신중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는 "朴전비서관을 마지막으로 소환한다.

혐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확보돼 있다.기소하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며 朴전비서관을 사법처리할 것임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18일 소환하는 걸 왜 벌써 발표하느냐" 는 질문에 "여러가지를 고려했다.명백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고 말했다.

소환 사실을 미리 공개해 소환을 막으려는 조직 내.외부의 시도를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생각임을 암시한 것이다.

그는 또 수뇌부와 이견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며 사실상 시인했고 소환 방침을 수뇌부와 조율했느냐는 질문에는 "검찰의 방침" 이라고만 답했다.

李수사기획관은 "총장의 재가를 얻었느냐" 는 질문이 빗발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대검 청사를 빠져나갔다.

대검의 한 직원은 "지난 97년 중수부가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를 구속할 당시의 분위기보다 더 험악하다" 고 말했다.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의 갈등은 朴전비서관의 혐의 내용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충분한 물증이 있다.만일 특별검사가 朴전비서관에게 혐의를 두는 내용을 먼저 발표하면 검찰은 만신창이가 된다" 고 주장한 반면, 수뇌부는 "본인이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니 시간을 좀더 갖자" 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李수사기획관은 기자회견에서 朴전비서관에게 공용문서 은닉죄를 적용하겠다고 공개해 버렸다.

이는 朴전비서관이 사직동 서류 일부를 숨겼고 최초 보고서와 최종 보고서가 달라진 데는 朴전비서관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수사팀은 또 朴전비서관에 대해 문건 유출뿐 아니라 옷 로비 전체와 관련돼 수사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허위보고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16일 하룻동안 대검 수뇌부와 李수사기획관 이하 수사팀 검사들 사이의 갈등은 그동안 상명하복(上命下服)에 익숙해 소신을 펴지 못했던 검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과연 이날 검찰 수뇌부가 순수한 법률적 판단에서 朴전비서관 소환을 늦출 것을 종용했을까. 아니면 무조건 朴전비서관을 보호하려 했을까. 그 해답은 수사팀이 18일 이후 朴전비서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 저절로 드러나게 돼 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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