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외국계 은행들 중기대출 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몇% 이상 빌려주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절대 폐지할 수 없다.

"

'중소기업 대출의무 비율제도' 가 최근 도마 위에 올랐다. 외국계 은행들은 이 제도가 국제 금융관행과는 동떨어진 제도라며 반발하고 있고 정부.한은은 폐지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최근 일본계 은행의 불만을 받아들여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옴에 따라 이 문제는 통상문제로 비화할 소지마저 안고 있다.

◇ 통상마찰 조짐〓외교통상부와 한은에 따르면 일본계 은행들은 한은이 중기 의무대출 비율을 정하고 외국계 은행 지점에까지 이를 지키도록 하는 것은 문제라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도 최근 이같은 입장을 한국 정부에 공식 전달했다.

실제로 일본계 Y은행의 국내 지점은 이 비율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한은 관계자는 전했다.

전재만(全在萬)외통부 아태통상과장은 "일본 정부가 최근 통상현안으로 중기 대출의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면서 "이에 따라 정부는 중기에 대한 자금지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설득 중" 이라고 밝혔다.

◇ 다른 외국계 은행도 불만〓미국계 은행 등도 IMF체제 이후 중기 대출에 따른 위험이 커져 이 비율을 맞추기 어렵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계 캘리포니아 은행 서울지점 원영호(元英鎬)부지점장은 "정상적으로 하면 외국계은행의 95% 이상이 이 비율을 맞추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 면서 "국제 기준으로 따져 돈을 빌려줄 만한 중소기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 비율을 맞추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문제" 라고 주장했다.

현재 외은 국내지점 가운데 상당수는 다국적 기업 형태로 국내에 진출한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대출해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元부지점장은 전했다.

외국계 은행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 금융당국이 과거에는 이 비율을 못 맞추면 각종 제재를 가했으나 요즘은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면서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제도는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 시중은행은 형평성 문제 제기〓국내 시중은행들은 취약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불가피한 제도라고 인정하면서도 은행간 형평성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빛은행 문홍주 중소기업부장은 "한은이 정책자금을 지원할 때 전체 중기 지원실적 보다 증가비율을 우선적으로 감안하다 보니 지원실적이 월등히 많은 큰 은행들이 소규모 은행에 비해 오히려 손해보는 경우가 많다" 고 지적했다.

◇ 정부 입장〓정부와 한은은 중소기업이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이 비율을 폐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특히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외국계 은행을 우대해주고 있는 만큼 외은을 위해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외은 지점의 경우 영업 여건에 차이가 나는 점을 감안해 의무비율을 낮춰줬다" 며 "만약 외은에 대해서만 이 제도를 없애면 역차별 문제가 생긴다" 고 말했다.

다만 그는 외국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중기 지원대책을 내놓긴 하지만 우리처럼 금융면에서 특별지원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박의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