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이번엔 ‘진정한 변화의 길’로 들어서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가 어제 당의 과감한 변화를 천명했다. 그는 “좌파나 우파, 진보나 보수의 틀을 벗어나 과감하게 선택하겠다”며 “교육·복지·노동·경제 등 전 분야에서 정책 전환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정부 10년간 여러 정책이 시행됐지만 꼭 거기에만 매달리지 않겠다”고도 했다. 정 대표의 선언은 10·28 재·보선에서 거둔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민주당의 정책적 쇄신을 단행하겠다는 의미다.

민주당이 변해야 한다는 명제는 새로운 게 아니다. 대선·총선에서 참패하면서 당의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다. 지난해 당의 조종간을 맡은 정 대표는 민주당 비전위원회(위원장 김효석 의원)를 만들어 ‘뉴(new) 민주당 플랜(plan)’ 작업을 벌였다. 위원회는 지난 5월 중순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를 2대 발전 전략으로 하는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플랜은 ‘현대화’의 개념이 모호하고 법치의 중요성을 생략하는 등 몇 가지 미흡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플랜은 대체적으로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변화 방향을 제시한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이나 지난 5월이나 변화의 관건은 언행일치다. 지난 5월에도 당은 탈(脫)이념을 선언하면서도 죽기 살기식 미디어법 반대투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5월 23일)하자 돌연 이념형 서거정국 투쟁에 돌입해 가투에 나섰고 오랫동안 국회 등원을 거부했다. 뉴 민주당 플랜은 ‘실종 신고’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정 대표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좌·우를 떠난 실용적 변화를 외치면서도 세종시나 4대 강 사업 그리고 미디어법에 대해선 다시 이념형 투쟁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는 재·보선 민심이 세종시 원안 고수, 4대 강 개발 유보, 미디어법 재개정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선거를 실용이 아니라 정략적 투쟁을 위한 이념 문제로 보는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민주당의 ‘정체성 상실’에 쏟아졌던 비판과 실망을 정 대표는 잊었는가. 재·보선의 작은 승리에 도취돼 다시 방향 감각을 잃으면 ‘뉴 민주당 플랜’은 실종이 아니라 사망 신고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