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디어업계 '몸집 불리기' 골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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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유럽 미디어업체들이 돈과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미국업계의 공세에 맞서 합종연횡(合從連衝)에 나서고 있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위성방송 BskyB가 최근 독일 키르흐그룹이 운영하는 키르흐 유료TV에 15억달러를 투자, 24%의 지분을 획득했다.

이에 앞서 이탈리아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총리가 이끄는 피니베스트그룹도 범유럽 TV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키르흐그룹과 제휴했다. BskyB에 24.5%의 지분을 갖고 있는 프랑스의 비벤디사가 운영하는 위성방송업체 카날플러스는 네덜란드 유료 TV 운영업체 넷홀드를 인수했다. 이처럼 유럽 미디어업체들의 관계는 난마(亂麻)처럼 얽혀가고 있다.

◇ 미국의 공세〓미국 미디어업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유럽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타임워너.바이어컴 등은 유료TV의 시청자들을 붙잡기 위해 CNN.MTV 등 방송 채널을 유럽업체에 팔고 있다.이 외에도 영화.TV 프로그램.토크쇼 등의 판매를 통해서도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 타임워너사는 이미 카날플러스의 위성사업에 출자했다. 현재 유럽 방송업체들은 미국측의 프로그램 배급 없이는 사실상 운영이 힘든 상황이다.

◇ '규모의 경제' 라야 산다〓유럽 미디어업계의 행보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지 않고서는 미국업체들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다. 특히 유럽업체들은 미국에서 부는 인수.합병(M&A)열기에 압도당하고 있다. 지난 9월 바이어컴이 CBS를 인수한 데서 드러나듯이 미국 경쟁업계는 방송.출판.음악.인터넷 등 전 분야에서 수직계열화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 미국 3대 방송사 중 프로그램 제작사를 끼지 않은 곳은 NBC 하나뿐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유럽 미디업업체들을 지켜온 보호막이 인터넷환경으로 사라지게 된 것. 예컨대 지금까진 유럽 방송업체들은 자국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50% 이상 방영해야 했다. 하지만 향후 인터넷 방송이 활성화되면 자국 업체를 돕고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기가 어려워진다.

◇ 아직도 널린 규제〓아직도 유럽에선 미디어 관련 규제가 많아 짝짓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미디어 분야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문화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자유분방한 미국세에 당할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영국에선 한 방송업체가 시장점유율 15% 이상을 차지할 수 없으며 신문시장 점유율이 20%가 넘는 업체는 TV 방송 업체를 소유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머독 또한 지상파 방송 사업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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