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얘기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은 3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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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호 35면

20세기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21세기 문맹자는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마음을, 소비자 마음을, 가족과 동료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어야 소통할 수 있으며, 소통이란 ‘예스(Yes)’를 이끌어 내는 설득력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리처드 파인먼은 수상식 참석을 거부했다. 스웨덴까지 갔다 오면 시간 손실이 많아 연구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파인먼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부인이 그의 마음을 ‘예스’로 움직였다. “불참하면 기자 수십 명이 몰려와 진을 치고 이유를 물을 텐데, 그러면 당신의 연구 시간은 더 빼앗길 수도 있다.” 남편의 손실기피 성향을 역으로 이용한 한마디였다. 시간을 덜 빼앗기도록 노력하겠다는 노벨위원회 측의 메시지보다 ‘더 뺏길지도 모른다’는 부인의 메시지가 설득력이 컸던 것이다.

글은 약속된 기호로서 읽지만 마음은 약속된 게 없다. 그래서 마음을 읽기 위해선 숨겨진 설득 포인트, 즉 킬링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지난 27년간 제품 브랜드 컨설팅(BI)에서 시작해 개인 브랜드 컨설팅(PI·Personal Identity)을 하면서 늘 받았던 질문은 설득 노하우다.

설득은 소통을 전제해야 한다. 소통은 발신과 수신의 교환이다.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선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즉 ‘발신을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물론 내 의견을 얼마나 조리 있게 잘 전달하느냐도 중요하다. 그러나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즉 수신 상태를 알지 못한다면 설득은 고사하고 오해만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마음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마음 읽기의 첫 단계는 잘 듣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얘기를 들을 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3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깜빡 놓치는 상태’가 반복된다. 그리고 그것은 말하는 이에게 저도 모르게 공허한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러나 스스로 ‘먼저 들어 주는 사람’이 돼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대방 말을 귀담아 듣고 있다가 적절한 곳에서 맞장구를 쳐주고 그 화제가 무르익을 수 있도록 에스컬레이터식 질문을 하는 것이다. “대단하시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어 준 사람, 내가 후련하게 말을 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인 호감이 생긴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기꺼이 그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고 그의 얘기는 설득력도 높아진다. 제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은 ‘듣기 천재’였다고 한다. 후에 그는 “내 귀가 나를 지혜롭게 인도했다”고 말했다.

마음 읽기의 두 번째는 태도를 읽는 것이다. 즉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 메시지를 읽는 것이다. ‘대화 중 상대를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으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언어(7%)보다는 비언어(93%)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무의식중에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제스처나 표정 등 비언어적인 것을 혼합해 총체적인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한 것이 정치인들의 손동작이다. 케네디의 자신감 넘치는 손동작은 클린턴에서 오바마로 벤치마킹되었다. 그렇다면 태도를 읽는 눈은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먼저 로맨틱 코미디처럼 대사와 표현이 다양한 DVD를 골라 자막을 없애고 볼륨을 끈 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해 본다. 대사와 배경 음악의 도움 없이 이해한 줄거리를 노트에 적은 뒤 다시 처음부터 감상해 보는 것이다. 처음에 보지 못했던 많은 단서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스토리 전개상 중요한 장면은 몇 번이고 리플레이 버튼을 눌러 반복해 보아도 좋다.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얼마나 세세한 내용까지 파악이 가능한지 스스로 놀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반복 훈련되면 태도를 읽는 눈이 밝아진다.

잘 듣기와 태도 읽기는 정치인이나 CEO들의 PI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적용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그들에게 경쟁력 있는 PI 컨셉트를 설정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예스를 이끄는 것은 소통된다는 느낌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대기업의 한 전문 경영인은 부임 초기 각 사업장을 돌며 150여 회가 넘는 대화를 하고 나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지 답이 보였다고 했다.

설득의 귀재가 되고 싶은가. 그러면 마음을 움직이는 비밀 지점, 킬링 포인트를 먼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먼저 대화 수신 능력을 높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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