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LL 우리 손으로 허물 작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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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대응하는 작전예규를 완화한 것은 재고돼야 한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돼 있던 작전예규를 경고사격이 가능한 한 자제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북측 함정의 NLL 무력화 의도가 없는 한 신중히 대응' 등의 단계가 새로 포함됐다고 한다. 이번 조치는 남북 함정 간 핫라인 개통을 바탕으로 신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보완책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우리는 이런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 우선 추가된 단계들이 현실을 떠난 탁상공론이기 때문이다. 언제 교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급박한 현장에서 북측의 NLL 무력화 의도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속에 감추어진 북측의 의도를 현장 지휘관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작전예규는 간단명료해야 한다. 그래야 장병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호하면 결국 지휘관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고사격 후 "무력화 의도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라고 따지며 우리 군만 족치겠다는 의도인가. 합참은 2002년 복잡한 작전예규로 극심한 피해를 본 서해교전의 비극을 잊었는가.

군 관계자의 설명은 옹색하다. 북측 어선을 구조하기 위한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을 용인한 적이 있어 이런 측면이 이번에 반영됐다고 한다. 물론 그럴 경우 우리 함정이 경고사격을 할 리가 없다. 그런 상황은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빌미로 작전예규까지 고치겠다는 뜻은 무엇인가.

국방부는 작전예규 개정의 근거를 남북 장성급 합의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미 장성급 합의는 북한이 지키지 않아 반신불수 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왜 우리만 그 회담에 목을 매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식의 이런 조치를 취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북측 배가 넘어와도 현지 해군은 "의도가 있는가, 없는가"를 분석해야 한다. 정부는 NLL을 우리 손으로 허물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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