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요리] 웨스틴조선 호텔 브렌더 총지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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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부부의 인연이란 게 있기는 있나 봅니다. 미국인 투숙객의 불만을 해결하러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얻으러 갔다가 만난 여인이 '나의 영원한 천사' 가 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

웨스틴조선호텔 총지배인 벤하드 브렌더(54)는 치즈케이크에 얽힌 추억이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일하던 지난 77년. 그의 사무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들자 한 미국인 투숙객의 불평이 시작됐다.

"이 호텔의 치즈케이크는 퍽퍽하고 맛이 엉망이다. 인근 하얏트호텔에 비해 너무 형편없다. " 투숙객은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해마다 결혼기념일에는 치즈케이크와 샴페인으로 축하해 왔는데 모레로 다가온 이번 25주년은 당신네들 때문에 망치게 됐다. 차라리 하얏트호텔로 옮기겠다."

그는 투숙객을 달래 결혼기념일까지 최고의 치즈케이크를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인터콘티넨털호텔 치즈케이크의 문제점을 파악하려고 친구인 하얏트호텔 총주방장을 찾았다.

주범은 크림치즈. 하얏트측은 직접 크림치즈를 만들어 쓰는 인터콘티넨털측과는 달리 미국산을 쓰고 있었던 것. "필요하다면 몇 박스를 빌려주겠다" 는 친구의 말에 곧장 달려간 그에게 친구 대신 비서인 무타티 디아스베라가 크림치즈를 건네주었다. 독일인 신랑과 인도네시아인 신부의 첫 만남이었다. 그가 미제 크림치즈로 새로운 치즈케이크를 만들어 미국인 투숙객을 기쁘게 했음은 물론이다.

1년반의 열애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이후 해마다 결혼기념일과 크리스마스는 물론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치즈케이크를 준비한다. 두 딸(20.13)과 9년째 서울생활을 하면서도 치즈케이크 사랑은 여전하다. 브렌더 부인은 "남편이 만들어 주는 치즈케이크는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움이 가득하다" 며 "우리는 크림치즈 덕에 발리에서 서로 좋은 기념품을 얻은 셈" 이라며 미소지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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