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방송법 시대 이제 시작이다] 4. 시청자 주권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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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통합방송법 통과로 시청자의 권리가 크게 확대된다.

방송사가 만든 '떡' 을 받아먹는 시청자 종속시대에서 시청자가 방송사에 '떡' 을 주문하는 시청자 주권시대로 전환된다.

우선 KBS는 대통령령에 따라 시청자가 만든 프로를 편성에 넣어야 한다.

학생.주부.직장인 등이 일상에서 느낀 문제를 영상에 담은 다큐.드라마 등이 KBS 전파를 타게 됐다.

영상제작의 대중화를 기약하는 획기적 조치다.

유선방송.위성방송에서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시청자 제작프로를 지역.공공채널을 통해 방송하도록 명문화했다.

주당 60분 이상의 시청자평가 프로 편성도 의무화된다.

KBS '시청자 의견을 듣습니다' , MBC 'TV속의 TV' ,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같은 옴부즈맨 프로가 튼실해지는 것이다.

사실 기존의 옴부즈맨 프로는 방송사를 간접 홍보하거나, 해당프로 지적사항이 제작현장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등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통합방송법에선 시청자 의견과 시정요구를 방송사가 수용하도록 못박고 있다.

유명무실했던 각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 기능도 강화된다.

방송위원회 규칙이 정하는 단체의 추천을 받아 시청자위원을 위촉하도록 했다.

방송사들이 임의로 운영했던 시청자위원회의 성격이 명확해지는 것. 시청자위원회 대표는 방송위원회에 나가 의견을 진술할 수도 있다.

심지어 국회 문화관광위가 추천하는 방송위원 3명도 시청자 대표성을 고려하도록 규정했다.

방송의 '객(客)' 처럼 비쳤던 시청자가 '주(主)' 로 돌아서는 법적 장치가 구비된 것이다.

그러나 법이 마련됐다고 시청자 주권시대가 당장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 역량을 결집하는 시민운동 등 다각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일단 시청자.시민단체에 대한 조직적 지원이 요청된다.

시청자 참여프로가 활성화한 외국에선 지역정부의 지원이나 민간단체의 자원봉사가 왕성하다.

미국에선 98년 현재 퍼블릭 액서스(시민참여) 전국조합에 1천여개의 방송조직이 가입돼 있으며, 독일은 공영방송의 수익금으로 40여개의 지역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승정 서울YMCA 시청자운동본부장은 "시청자단체도 소비자.환경단체처럼 조직을 키워 전문성을 갖춰가야 한다" 고 말했다.

특히 미디어 교육의 내실화가 필수적이다.

TV를 비판적으로 읽고 소화하는 성숙한 시청자층이 형성돼야 거대 방송사에 발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미국.영국.캐나다 등 외국에선 초.중등 과정부터 체계적인 미디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통합방송법에선 방송사의 매출에서 일정액을 걷는 방송발전자금을 시청자 제작프로 및 미디어 교육활동에도 쓸 수 있도록 정해놓았다.

시청자 제작프로를 지난 3월부터 6개월 동안 실험적으로 내보냈던 인천방송(iTV) '당신의 채널' 의 최병화 PD는 "학생.일반인 구분없이 영상물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져 프로그램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 이라며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은 시청자 제작프로의 확대는 결국 TV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 이라고 진단했다.

확대된 권리만큼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책임 또한 막중해지는 시점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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