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받는 '강한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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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국제사회는 패권국 미국의 독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영향력을 보다 확대하려는 미국과 미국의 입김을 배제하려는 여타 국가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엔 유럽과 러시아가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유럽은 미국의 군사적 그늘을 벗어나 독자방위체제를 구축하려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러시아는 자국 주재 미국 외교관에 대해 스파이 혐의로 추방령을 내렸다.

' 이같은 움직임은 코소보 및 이라크 공습을 비롯한 여러 국제문제에 있어 자신들이 무시되거나 미국의 들러리 역할밖엔 못했다는 자성과 반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 미 - 유럽〓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EU를 주도하는 4개국은 최근 유럽방위군 창설을 핵심으로 하는 유럽방위체제에 관한 협정 초안에 합의했다.

오는 10~1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 이 초안이 제출될 예정이다.

지난달 30일 프랑스와 독일 양국 정상회담 후 구체화된 유럽방위군의 모습은 자체 지휘체제와 정보조직, 해군 및 공군지원 체제를 갖춘 5만~6만명 규모로 돼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그늘을 벗어난 독자적인 작전수립 및 수행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양국 정상은 유럽방위군이 코소보 주둔 평화유지군(KFOR)사령부까지 흡수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계획은 지금까지 논의됐던 나토내 군사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의 신속대응군 창설 계획보

다 훨씬 진전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은 "신속대응군 창설에는 찬성하지만, 유럽 군사력이 나토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반대한다" 는 입장을 밝혀 미-유럽 사이의 갈등을 예고했다.

◇ 미 - 러〓러시아 주재 미 대사관의 2등 서기관 체리 리버나이트(33.여)문제도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안. 러시아는 지난달 29일 러시아인으로부터 군사기밀 서류를 넘겨받는 현장에서 그녀를 체포한 뒤 1일 추방령을 내렸다.

냉전 종식 후 양국간에 현직 외교관이 스파이 혐의로 추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버나이트의 체포는 대니얼 킹(40)이라는 미 해군하사관이 러시아에 군사정보를 넘겨준 혐의로 기소됐다는 미국측 발표가 있은 지 하루만에 발생한 일이라 미측에선 보복성이 짙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이 문제에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러시아의 언론들은 '새로운 냉전의 시작' 이라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체첸문제.유고 공습 등으로 미국과 신경전을 벌였던 러시아의 반미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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