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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발포 진압군 장갑차가 발단"-당시 공수부대원 주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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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인들의 전남도청 앞 발포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 '공수부대원 사망' 은 진압군의 장갑차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80년 5월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일병으로 광주에 동원됐던 이경남(李敬男.43.목사.강원도 횡성군)씨는 계간 '당대비평' 겨울호에 '20년만의 고백-한 특전사 병사가 겪은 광주' 란 글을 실었다.

광주에 투입됐던 병사가 진압상황을 고백하는 글을 발표한 것은 처음으로 2백자 원고지 1백30매 분량이다.

李씨는 이 글에서 "시위대가 진압군을 향해 트럭을 몰고 돌진하자 군부대 장갑차가 급히 퇴각하면서 넘어진 군인을 덮쳐 죽게했다" 고 증언했다.

진압군 행렬 맨 뒤에 서 누구보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그는 "사고 후 얼마 있다 장갑차에서 금남로를 향해 발포가 있었다" 고 말했다.

당시 현장지휘관은 청문회에서 "시위대가 탈취한 장갑차로 진압군을 향해 돌진, 군인들을 치면서 발포가 시작됐다" 고 증언했다.

검찰의 수사 발표문에도 "시위대의 장갑차가 공수부대쪽으로 돌진, 미쳐 피하지 못한 공수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1명이 사망하였고 놀란 계엄군 장갑차 소대장이 공중 발포했다" 고 기록돼 있다.

그는 "장갑차에 탑승했던 선임하사관.사망한 병사.현장 지휘관 등 모두 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고 덧붙였다.

그는 이와 함께 "80년 5월 22~24일 무등산 주둔시 인근 대대에서 포로로 잡은 대학생을 집으로 가라고 한 뒤 뒤에서 총으로 쏴 사살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졌다" 고 밝혔다.

그는 "무등산에서 총상 입은 유골이 발견됐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이때 사살된 대학생일 것으로 생각했다" 고 말했다.

또 5월24일 광주 송암동에서 특전사 병사들이 차량으로 매복해있던 보병학교 소속 부대원들과 교전, 현장에서 9명이 사망하고 4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당시 특전사 일부 병사들이 길가에 총을 쏘면서 가는 바람에 시위대로 오인, 무반동포로 무장한 보병학교 부대원들의 집중 사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목원대에서 신학을 전공하다 입대한 李목사는 송암동 오인사격으로 중상을 입고 9개월간 입원하기도 했다.

李목사는 "다시는 이같은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차분히 정리했다" 며 "불행했던 역사를 되돌아 보고 모두가 반성하고 성찰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 안종철(安鍾澈)5.18전문위원은 "이목사의 고백은 전남도청 앞 발포와 관련한 정설을 뒤집는 것으로 진실규명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다" 고 밝혔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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