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테른 지역에서 스위트 와인을 만드는 여성 샤토 오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SOPEXA) 제공]
여인의 입술처럼 붉고 감미로운 와인. 여성이 만들면 어떤 맛일까. ‘와인의 자존심’ 프랑스 보르도에서 샤토(포도원과 거기에 딸린 양조장·저장고를 통칭하는 말)를 직접 운영하는 여성 메이커들을 이달 중순 만났다.
“아버지가 남성적이고 구조감이 있는 와인을 고집한 데 비해 부드럽고 섬세한 와인을 추구합니다.” 앙트 두 메르에서 샤토 티엘리를 경영하는 마리(33)와 실비(31) 쿠르셀 자매는 양조학과 경제학을 전공해 가문의 대를 잇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울었다”며 “당시만 해도 여성이 샤토를 운영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르도의 소규모 가족 경영 샤토 중엔 여성이 운영하는 곳이 꽤 있다. ‘금녀의 벽’을 깨고 딸이 대를 잇는 경우가 늘어나서다. 규모가 큰 샤토들은 재벌이나 해외 자본에 많이 넘어갔다고 한다. 이들은 보르도 전통을 중요시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로 변화를 이끌고 있다. 보르도에선 드물게 여성을 겨냥한 브랜드 와인을 따로 만들기도 하고 라벨에 예술가의 그림을 넣거나 궁합이 맞는 요리를 소개하기도 한다. 와인클럽을 운영하며 회원들이 수확한 포도를 따로 양조해 백라벨에 회원 이름을 넣어주는 곳도 있다. 장미를 컨셉트로 해 샤토 이름을 ‘라 로즈 벨뷔’라고 지은 곳도 있다. 이곳 주인 발레리 에마스는 “시어머니가 장미를 좋아해 와인 라벨·케이스·명함을 전부 분홍색으로 바꿨다”며 “남자들은 좀 거북해한다”고 귀띔했다.
메도켄이 내놓은 와인 튜브세트.
이들은 각각 만든 와인 네 병을 한 세트로 묶어 파는 공동 마케팅도 펼친다. 관광객을 위해 60mL(1잔 분량) 튜브에 담은 세트상품도 내놨다. 카즈뇌브는 “메도크는 타닌이 풍부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유명하지만 메도켄은 우아하고 섬세한 메를로를 비교적 많이 블렌딩한다”고 말했다.
보르도=이경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