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신작 '와호장룡' 로케 대만 이안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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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한 국 감독이 찍는 영화에 남.북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참여하고 그 영화의 제작비를 할리우드가 댄다면? 그래서 할리우드의 탄탄한 배급망을 타고 전세계 극장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다면…. 생각만해도 마음이 설레이고 뿌듯해지는 일이다.

중국, 그곳에선 벌써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만.홍콩.중국 등 '3중국' 의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중국에 모여 할리우드의 지원을 받아가며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다. 이런 '3중국 합작' 의 대열에서 메가폰을 잡은 주인공은 대만의 이안(李安.45) 감독. '음식남녀' (94년) '결혼피로연' (94년) 등의 영화를 통해 주목받은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해 '센스, 센서빌리티' (95년) '아이스 스톰' (97년) '라이드 위드 더 데블' (99년)등을 찍었다.

신작으로 그가 선택한 영화는 정통 무협 서사극 '와호장룡' (臥虎藏龍). '음식남녀' '결혼피로연' 등 가족 드라마에 치중했거나 서구적인 경향이 짙었던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 볼 때 이는 꽤나 보폭이 큰 변화다. 배우들도 화려하고 말그대로 '국적' 도 다양하다. 저우룬파(周潤發).양쯔충(楊紫瓊).장쯔이(章子怡).장천(張震) 등 홍콩.중국.대만 배우들이 호흡을 맞추고 '매트릭스' 의 무술지도를 맡았던 홍콩의 무술감독'리셀웨폰4' 등 할리우드로 진출했던 무술감독' 원허핑(袁和平) 등도 이 영화에 합류했다.

이안 감독, 그는 왜 갑자기 자신의 시선을 무술영화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일까. 중국 베이징 스튜디오에 지어진 '와호장룡' 의 세트에서 그를 만났다.

- 감독께서 무협서사극을 만드신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작들에 비해 소재나 장르에 있어 완연히 다른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작들과 다르다는 것이 바로 이유입니다. 이 영화는 제게 새로운 모험이에요. 나는 주로 가족영화를 만들어왔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죠. 난 더 큰 캔버스를 찾아왔어요. 전쟁, 무술, 그리고 로맨틱한 전설을 함께 담은 영화들을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었죠. 무협영화와 소설은 제 어린 시절의 큰 부분을 차지 했거든요. 이제야 그런 기회를 얻은 겁니다."

- 홍콩.중국.대만 등 '3중국' 의 영화인들이 꼭 모여서 작업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요.

"우리는 서로 필요했기 때문에 모인 거예요. 그건 우리의 꿈이기도 했죠. 특히 무술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당연히 홍콩 영화인들의 도움이 필요했구요. 그들은 그 방면에 최고잖아요. "

- 이번 영화를 연출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무협영화이지만 드라마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무술은 여기서 인간의 내면적인 것을 바깥으로 보여주는 드라마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 감독은 소재나 실제 제작 활동에 있어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감독으로 여겨지는데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개인적인 정체성 자체가 감독에게 '전부' 는 아니에요. 왜 대만의 첼리스트인 요요마가 바흐를 연주하겠습니까.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다양하죠. 거대한 산업의 뒷받침을 받으며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솔직히 매력적인 일이에요. 좀 더 큰 무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는 점에서 말에요. 솔직히 '아이스 스톰' 을 만드는 일이나, 엠마 톰슨 같은 배우랑 '센스, 센서빌리티' 를 연출한다는 일은 제건 정말 거부하기 힘든, 해보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 작품을 통해 동서양을 접합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어렵지만 또 즐겁고 만족스러운 면도 있죠. 저는 이장소 저장소를 오가며 일하는 게 재미있고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일하는 것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아요. 하지만 제게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입니다."

- 동양출신 감독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는게 외롭지는 않습니까.

"전 항상 외로워요. 특히 여기(중국)에서 일하는게 더 외로운데요. 지금 촬영이 5개월째인데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어요. 가족들도 여기에 없구요. 어차피 매번 도전이 필요한 영화만들기는 절 외롭게해요. "

베이징〓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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