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한들, 인질 옆에 누워 자폭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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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잇따른 테러로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모스크바 시내 지하철역 앞에서 자폭 테러가 발생해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자폭 테러로 추정되는 두 대의 러시아 여객기가 동시에 추락해 90명의 희생자를 낸 사건이 일어난 지 1주일여 만이다. 1일에는 체첸과 인접한 북(北)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한 학교에서 학생.교사.학부모 등 250여명이 무장 괴한 30여명에게 인질로 붙잡혔다.

◆ 인질극=괴한들이 학교에 침입할 당시 학교 주변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몇 분 뒤 학교 건물에 화재가 발생, 연기 기둥과 화염이 치솟았다. 무장 괴한들은 학교 체육관에 학생.교사.학부모 등 250여명을 몰아 넣은 뒤 인질로 붙잡고 있다.이타르타스 통신은 이 과정에서 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체육관에는 폭탄이 설치됐다. 괴한들은 인질들에게 바닥에 눕도록 지시했다. 자살용 폭발물 벨트를 찬 괴한들은 인질들 옆에 누워 함께 죽을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인질로 붙잡힌 학생 중에는 1~2학년 어린이들이 많고, 개교식을 맞아 부모와 함께 온 어린아이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테러범들은 "동료들이 한명 사살될 때마다 인질 50명을, 한명이 부상할 때마다 인질 20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학교 건물 전체를 폭파하겠다는 말도 했다.

◆ 괴한은 누구=괴한들은 아직 자신들의 신분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 반군 지도자 측은 인질사태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괴한들의 요구 내용과 최근 테러사태 등에 비춰 체첸 반군일 것으로 보고 있다. 괴한들은 인질 석방 조건으로 ▶러시아 연방군의 빠른 체첸 철수 ▶체포된 체첸 반군 20여명의 석방 등을 요구하고 있다. 괴한들이 또 다른 체첸 반군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가 이끌고 있는 '잉구슈 자마트'라는 단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 협상=괴한들은 창문으로 쪽지를 던지며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화 상대로 알렉산드르 자소호프 북오세티야 공화국 대통령, 무라트 자지코프 잉구슈 공화국 대통령, 러시아의 유명한 소아과 의사로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사태 때 중재역을 맡은 레오니드 로샬 박사 등만을 지정했다. 러시아 측이 보낸 협상단은 거부했다.

◆ 북오세티야=러시아 남부 북카프카스 지방에 있는 크기 8천㎢에 인구 67만3800명의 자치공화국. 러시아와 무력 충돌을 빚고 있는 체첸과는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국토 대부분이 산지다. 수도는 블라디카프카스로 인질극이 벌어진 베슬란은 수도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져 있다. 이란인과 야벳인의 혼혈인 오세티야인을 비롯해 러시아인과 아르메니아인.그루지야인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한다. 1992년 3월부터 신연방조약에 따라 자치공화국이 됐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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