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대입 교차지원 문제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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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7일 수험생들이 수능시험을 치렀다. 올해엔 인문.자연계열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대학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상위권 일부 대학은 우수학생 유치 때문에, 또 다른 많은 대학들은 학생 유치와 선택권 확대란 미명 아래 행해지고 있어 이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교차지원 허용은 지원자격을 대폭 완화한 조치로 당시의 변은 이랬다. 이과계열 한의대의 경우 한문 등 문과적 성향이 필요하기 때문에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일리가 있다는 판단이 일부에서 제기되며 어느새 특수한 경우를 모든 경우에 마구잡이로 적용시킨 교차지원 허용이 각 대학의 다양한 전형요강 속에 자리잡았다. 올 입시의 경우 전국 1백86개 대학 중 1백70개 대학이 정시모집에서 인문.자연 계열 교차지원을 허용했다.

게다가 그중 상당수 대학은 특차에서까지 허용했으며, 일부는 아예 예체능 계열을 포함한 전 계열 교차지원을 실시한다고 한다.

이 경우 공대를 비롯해 자연과학 학과들은 불공정한 전형방법으로 인해 타계열 학생의 입학이 유리해진다.

이과계열에서 공부해야 할 수리탐구 능력의 검증을 피한 채 정도를 걸어왔던 이과생을 부당하게 제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또 수리탐구 능력이 다져지지 않았으니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신입생들도 많아졌다. 만약 미술과 신입생을 체육실기가 우수해 선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혹자는 수험생이 소신을 갖고 지원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합격이 지상목표였던 타계열 학생이 교차지원 허용 덕분에 입학해 기초부족과 적성이 없어 방황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아왔다.

제도의 성패는 심각한 하자(瑕疵)의 유무에 의해 결정된다. 교차지원 허용에 대한 허점을 일부 학생들은 이미 간파하고 합격을 위해 유리한 루트를 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학생들이 어려운 수리탐구 영역을 피해 문과계열로 몰리고 문과계 또는 예체능계 수능을 치르고는 합법적으로 이과계열로 들어올 수 있다면 누가 어려운 이과계열에 남아 있겠는가.

고등학교에서 이과 이탈현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만약 내년에도 교차지원 허용이 계속된다면 정도를 걷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계열붕괴' 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자연과학 및 공학의 학문전수에 문제가 심각해진다.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의 발전은 창의력과 과학의 발전에 정비례하므로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우리나라는 큰 화를 당할 것이 자명하다. 더욱이 시행될 제7차 교육과정은 학생의 진로와 관련해 엄격한 절차 없이 자신이 계열과정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시스템이다.

이 상황에서 대학의 계열교차지원 허용은 수험생들에게 어려운 수리탐구 관련 과목들을 쉽게 피해가도록 유도해 이과계열 붕괴를 재촉할 게 확실시된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지킬 것은 지키게끔 시스템을 잘 마련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무다.

공연한 교차지원 허용이 교육의 기본 틀을 손상시키는 가공할 폭발력이 있는 태풍으로 우리 사회에 다가오고 있다.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에 교차지원 허용은 반드시 철폐돼야 한다.

문권배 <상명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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