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방형 임용제' 정착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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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내년부터 실시키로 한 고위 공직자 개방형 임용방식은 서경원 사건 재수사, 이근안 고문수사 등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 정리에 가려져 여론의 관심에서 비켜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이 제도는 그동안 '철옹성' 으로 불릴 만큼 견고했던 관료기구의 폐쇄성을 타파하고 역량있는 외부인재 등용의 물꼬를 틈으로써 국민적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정부경쟁력 향상의 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행정부 안팎이 함께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그러나 이 제도가 담고 있는 전향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민과 공직자들은 과연 이 제도가 공명정대하게 운영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열린 정부' 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눈길을 떼지 않고 있다.

특히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는 풍토에서 이 제도가 혹시라도 정권의 전리품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도 광범위한 인력풀의 활용과 정치권의 영향력 배제, 그리고 투명한 운영과정이 주도면밀하게 보장돼야 한다.

개방형 임용제도는 다수 고위공직이 이제 더 이상 고시제도와 내부승진 관행, 그리고 내부경쟁만을 타고 상층부에 진입해온 전통적 기득관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의 신선함 이면에는 상당수 공직자들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경쟁에 대한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제도가 안고 있는 반사적 불이익을 상쇄하고 관료제도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안정적 기축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승진 및 경쟁시스템의 재구축과 함께 능력개발프로그램이 다각도로 탐색돼야 한다.

개방형 방식을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있는 기존의 공무원들 역시 이제 '공무원 좋던 시대는 다 지나갔다' 는 냉소적 자괴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쟁' 과 '개방' 이라는 불가피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자기성찰과 능력배양에 매진할 때에만 공직 수행의 윤리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겸허한 공직관의 확립이 요망된다.

앞으로 1~3급 고위공무원의 20%가 개방형 인사로 채워질 공직사회의 조직문화가 쇄신돼야 개방형인사 방식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아직도 우리의 공직사회는 직분과 인간관계가 오묘하게 얽혀질 때 맡은 바 직무를 매끄럽게 수행할 수 있는 측면이 적지 않다.

"오후 6시 이전까지 일을 잘 해야 하는 것 못지 않게 6시 이후의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는 어떤 공무원의 넋두리처럼 소위 '끈' 으로 통하는 끈끈한 인간관계의 형성을 중시하는 우리의 조직문화는 개방형 인사의 입지를 좁힐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로 승부를 거는 풍토가 아닌 본원적인 일로 승부를 거는 조직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현실성 있고 객관적인 공직업무 평가방식의 개발과 아울러 철저한 직위분류제의 도입이 긴요하다.

앞으로 정부부처 경쟁력의 일정한 몫은 개방형인사를 기존관료제가 얼마나 대승적으로 감싸안으면서 그들의 역량을 유효 적절히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때 기존 관료제의 성숙된 융화노력이야말로 개방형인사제도 정착의 선결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개방형 인사방식이 내년 중 선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다수 개방형 직책에 경쟁할 수 있는 민간인사들의 인력풀이 그렇게 넓지 않아 경우에 따라서는 형식적인 경쟁이나 관료제의 내부경쟁 등 외화내빈의 양상을 띨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중앙인사위원회 당국은 개방형직위에 대한 광범위한 대국민홍보와 아울러 적극적 충원독려 노력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역대정권을 통해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라는 점을 따갑게 들어왔던 국민은 개방형인사 도입을 계기로 어느 기업인의 말처럼 한국의 공무원이 3류가 아닌 2류, 1류로 격상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2000년을 가르는 대전환기에 고위직 공무원뿐 아니라 장관.차관.공기업의 장 등 대통령의 통치권에 속하는 직위들에 있어서도 개방형인사제도의 취지와 시대정신에 맞게 인사권 행사가 이루어지기를 주권자들은 고대하고 있다.

오연천 <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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