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강좌 개설 등 대학 선거 탈정치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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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MP3(음악 압축파일)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겠습니다. " "여학생 운동 공간을 마련하고 재즈 댄스 강좌를 개설하겠습니다. "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해마다 되풀이되던 정치적 구호가 사라지고 낯선 공약들이 등장하는 등 선거문화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최근 내년도 총학생회장 선거에 돌입한 대학에서는 민족.통일.민중.해방 등 이른바 운동권 용어 대신 감성을 자극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대거 등장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눈에 띄었던 '환란(換亂)책임자 처벌' '재벌개혁 추진' 등의 선거공약은 자취를 감췄으며, 문화운동 확산.생활개혁 추진 등 탈정치적인 내용이 선거 공약으로 떠올랐다.

서울대에는 '임펄스 2000' '데모크라시아' '전략 2000' '광란의 10월' 을 각각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5명의 후보가 지난 2일부터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중 가장 이색적인 선거 공약을 제시한 진영은 '광란의 10월' 의 許민(21.공대4)후보. '서태지와 아이들을 떠나보낸 X세대의 끝물' 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許씨는 대학에 문화.스포츠.오락 관련 강좌를 신설하고 내년 10월 수십명의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문화축제를 열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는 '웃자, 소크라테스여' '꿈이 있는 자유' '우리, 꼬뮤나르드' '스물하나 생동하는 자주대학' 등의 문구를 내걸고 4명의 후보가 나섰다.

'웃자, 소크라테스여' 의 禹재준(25.경영4)후보는 즐거운 대학생활을 위해 학내복지사업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꿈이 있는 자유' 의 尹대현(22.신학4)후보는 '교내 헬스장 보수' '영상 편집실 설치' 등을 약속하고 있다.

대학 선거에서 공통적인 공약사항은 등록금인상 저지.교내시설 확충.교내 행정정보 공개 등 대부분 학내 문제며, 운동권들도 앞다퉈 이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올해 초 한총련에 대응하는 전국적인 운동조직으로 등장, 최근 선거를 앞두고 '꼬뮤나르드' 라는 대학별 조직을 구성한 전국학생회연합회가 대표적인 예.

'파리코뮌의 사람들' 이라는 뜻의 슬로건을 내세운 이들은 전국 30여개 대학의 선거에 동시다발적으로 뛰어들어 자본주의적 생산.유통질서를 파괴한다는 이념을 내세우고 있지만 '학생 추천과목 개설' '성적(性的)소수자 권리보장' 등 선거 공약면에서는 탈정치적 생활개혁운동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 선거문화의 변화에 대해 서울대 김안중(金安重)학생처장은 "학생들의 관심이 문화운동과 학내복지문제에 기울어진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그만큼 정치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학생회가 더 이상 기성정치집단을 닮지 않는다는 면에서도 바람직한 현상" 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교육학과4학년 유인찬(兪人贊.22)씨는 "각 후보들이 특색있는 선거운동으로 관심을 끌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좀처럼 학생들이 학생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 호응을 받을지는 두고 볼 일" 이라고 말했다.

이상언.배익준.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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