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령탑 사퇴선언 캉드쉬] 금융위기 소방수 美서 퇴진 압력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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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제금융계의 소방수' 미셸 캉드쉬(66) 국제통화기금(IMF)총재가 영욕의 IMF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오는 2002년까지의 5년 임기 중 절반을 남기고 내년 2월 중순 중도하차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87년 이래 12년6개월에 이르는 역대 최장수 재임기간 중 동구권의 붕괴와 멕시코와 아시아.러시아 금융위기 등 국제금융사에 다시 보기 어려운 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겪었다.

특히 97년 아시아 위기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각국을 방문해 구제금융 지원 결정 등 위기 해결을 위해 진두지휘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캉드쉬의 재임 중 업적에 대해서는 양론이 엇갈린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금융경찰인 IMF를 잘 이끌어 세계경제를 파탄에서 구해낸 영웅으로 평가되는가 하면, 위기의 조기 포착과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위기 대처 과정에서 IMF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받고, 최근 러시아의 IMF 자금 전용설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暳?있다.

한국과 관련해선 상황에 따라 진단이 엇갈려 비판을 받았다. 95년 연차보고서에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경제개발에 성공한 나라이며 경제의 기본여건이 좋다" 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97년 위기가 닥치자 "한국은 여러해 전부터 계속된 IMF의 경고를 무시해 결국 '10일 이내 금융파국 위기' 를 호소하는 다급한 처지에 놓이게 됐으며 이는 모두 한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 이라고 몰아붙였다.

세계 금융위기가 진정되면서 위기 처방에 대한 그의 입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위기국의 통화안정과 투자신뢰 회복만이 최선의 처방이라고 주장했으나 최근 들어 거시경제 개혁만으로는 미흡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IMF 역할과 관련, 캉드쉬는 지난 9월 워싱턴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회의때 "세계빈곤 축소를 IMF의 두번째 목표로 삼겠다" 고 제시하기도 했다.

정통 금융인 출신의 캉드쉬는 지난 82~84년 극빈국 부채탕감을 위한 선진국 모임인 파리클럽 의장으로서 탁월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전력도 있다.

캉드쉬의 사퇴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지난 9일 이사회에 제출한 사퇴서에서도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세계경제가 긍정적인 전망을 보이는 이 시점이 (물러날) 적기라고 생각한다" 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조기퇴진설은 올해 초부터 워싱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고 진원지로는 미국 의회가 꼽히고 있다.

고집스런 캉드쉬가 미 의회와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97년 이후 아시아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결정적으로 미 의회의 반감을 사게 됐고, 미 의회에서 사임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금융위기국에 대한 지원자금으로 1백80억달러를 추가로 출연받으면서도 캉드쉬가 뻣뻣한 자세를 굽히지 않아 트렌트 롯 미 상원 원내총무(공화)는 공개적으로 캉드쉬의 퇴진을 요구한 적도 있다.

[캉드쉬는]

▶프랑스 베이욘느 출생(1933년)

▶파리대학 및 국립행정대학원 졸업(경제학 전공)

▶프랑스 재무부 이재국장

▶유럽경제공동체(EEC)금융위 원장(82~84년)

▶파리클럽 회장(82~84년)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84~87 년)

▶제7대 IMF 총재 취임(87년), 2회(92년)및 3회(97년)연임

워싱턴〓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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