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일현씨 조사에 유의할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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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언론장악' 문건의 핵심 당사자인 문일현(文日鉉)씨가 그제 귀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는 검찰이 예컨대 "특검제를 적용하라" 는 등의 뒷말을 한마디도 듣지 않게끔 철저히 사실관계를 파헤쳐 사태의 진상을 규명해 주기 바란다.

검찰 수사는, 이강래(李康來)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형근(鄭亨根) 한나라당 의원과 문건 작성자를 지목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데 따른 것인 만큼 사태의 본질인 권력에 의한 언론장악 기도 의혹을 제대로 짚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수사 결과는 국정조사에 유력한 지침을 제공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검찰 수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文씨의 '베이징 행적' 은 의문투성이다. 단순히 휴직 중인 기자이자 유학생 신분으로 보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언론문건 작성과 전달이 '개인의 소신' 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 가장 미덥지 않다. 휴직 중인 기자가 소속사를 포함한 주요 신문사들을 총선 전에 장악해야 한다는 구체적 방법론을 문건으로 소상히 정리해 집권당 부총재 방에 보낸 일이 개인적인 행동이라고 믿기엔 너무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당사자가 설혹 권력 지향적인 일탈(逸脫)기자상의 표본이라 해도 납득하지 못할 부분이 많다. 이 대목에서는 역시 文씨와 이종찬(李鍾贊) 국민회의 부총재의 관계가 초점인 만큼 필요하다면 李부총재를 다시 불러서라도 문건작성 동기와 지시.협조 여부를 투명하게 가려야 한다.

文씨가 청와대와 국민회의 간부들에게 걸었다는 국제전화만 해도 그렇다.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19분이나 전화를 했다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통화로는 연결되지 않았다거나 안부를 묻는 대화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연고로 文씨는 기라성같은 정계 실세들과 숱한 통화를 그토록 자연스레 할 수 있었는지 이 또한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거비보다 통화요금을 더 많이 쓰게 된 이유를 밝히라" 는 야당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특히 한나라당 鄭의원이 문건 폭로를 예고한 직후 통화 횟수가 크게 늘어난 점도 검찰이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검찰은 한나라당에 협조를 요청해 문제의 통화기록들을 입수하고, 청와대나 국민회의의 관련 전화내역도 확보해 의문점들을 풀어야 한다.

언론문건은 전반적으로 현 정부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라는 의혹이 짙기 때문에 文씨와 여권 인사들의 '교감' 여부 규명은 사태를 파악하는 중요한 절차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검찰이 文씨의 노트북 컴퓨터를 확보한 것은 문서작성 동기와 관련 인물, 그 후의 경로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실체적 진실에 대한 어떤 예단(豫斷)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 추측하는 것처럼 이번 문건 사태가 文씨 개인 작성 - 李부총재 방에서 도난 - 鄭의원의 '표적이 빗나간 폭로' 라는 해프닝으로 매듭지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의도' 가 끼어든 수사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검찰 수사에 이은 철저한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검찰의 면밀한 공정조사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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