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도 태권도 기술이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이런 식으로 하려면 태권도를 올림픽에서 빼라."(ID '촌철')

대한태권도협회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뜬 글이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 태권도 선수들의 경기가 시작(8월 26일)되면서 오른 900개의 글 가운데 하나다. 다른 글들도 대부분 한국 선수들의 소극적 플레이를 질타하는 내용이다. 금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따내긴 했지만 종주국다운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이 따갑다.

태권도 유단자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외국 친구가 한국 선수가 뒷걸음질치는 걸 보고 '저건 무슨 기술이냐'고 묻더라"며 우리 선수들의 경기 자세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ID '이대로'는 "양태영의 금메달은 되찾아오고, 태권도 메달은 돌려주자"고 썼다.

다만 KO승을 거둔 문대성(28.80㎏ 이상급)에 대해선 호의적이었다. "문대성이 종주국의 체면을 겨우 세웠다"는 글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태권도계 인사들도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재미있고 화끈한 경기종목이 되도록 규칙을 바꾸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경기가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경우 올림픽종목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김범수 성균관대 태권도팀 감독은 "크게 앞선 상태에서도 뒤로 빠지라고 가르치는 지도 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팀 운영방식과 규칙 개정 문제도 제기된다. 류병관 용인대 교수는 "올림픽 직전에 선발전을 치르면 득점력만 좋은 선수들이 뽑히므로 상비군을 운영해 기초까지 튼튼한 선수들을 길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망칠 공간이 넓은 현재의 경기장 크기(12×12m)를 줄여 원형으로 바꿔야 한다든가, 시간을 끌려고 경기장을 벗어나거나 넘어지는 선수에게 감점을 강화하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