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21세기형 전경련 회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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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새 회장을 모시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안 사정도 그렇고 바깥 사정도 흉흉하다.

우선 전경련 회원 중에 감히 다음 회장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서로 한번 해보려고 운동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격세지감을 갖게 된다. 하기는 전경련을 끌고 온 재벌들이 지금처럼 사회와 정부로부터 각종 압력에 시달린 적이 없으니 당연한 심사이기도 하다.

문제는 전경련에 대한 바깥 시각이다. "서로 친하게 지내자고 '임의' 로 만든 모임인데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 있느냐" 또는 "엄연한 민간단체인데 정부가 전문경영인은 회장이 될 수 있고 총수는 안된다고 할 수 있느냐" 고 볼멘 소리를 할 수는 있다.

또 재벌 이익이나 대변하는 단체라며 전경련을 곱게 보지 않는 것이 어제 오늘의 얘기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재벌이면 누구나 막대한 부채를 끌어다가 돈이 되는 것이면 어디에든 숟가락을 내밀고, 자식이나 손자에게까지 경영권을 넘겨주며, 불황이나 빚 갚기에 짓눌려 급기야 나라 전체에 큰 부담을 지운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세상이 그런 걸 누구를 탓하겠는가. 많은 식자가 그런 재벌관을 가지고 있고 정부의 재벌정책도 그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전경련의 새 회장은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재벌과 전경련의 새로운 변신을 상징하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경련 차기회장은 21세기를 여는 회장이다. 사람들은 전경련의 '20세기의 짐' 을 떨고 재도약을 이끌 회장을 기대할 것이다. 구태여 전문경영인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건전한 재무구조로 금융기관이나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고, 한 두 업종에서라도 국제경쟁력을 갖추었으며, 세무조사설에 당당할 수 있고, 세습이 아닌 제 능력으로 총수의 자리에 오른 사람일 필요는 있다. 마치 새 회장을 뽑지 말라는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사회적 기대는 그렇다는 말이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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