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영석 '그리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갈꽃이 바람에게

애타게 몸 비비는 일이다

저물녘 강물이

풀뿌리를 잡으며 놓치며

속울음으로 애잔히 흐르는 일이다

정녕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은

산등성이 위의 잔설이

여윈 제 몸의 안간힘으로

안타까이 햇살에 반짝이는 일이다

- 김영석(54) '그리움'

요즘 20, 30대 시인들의 상당한 부분이 자기최면을 거는 내면의 유희 또는 현학취미가 두루 걱정이 될 때 이렇게 그리움 하나를 그 진부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의젓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그려낼 수 있는 힘은 실로 놀랍다. 시다운 시이고 노래다운 노래다. 시가 감정에 푹 빠져버리지 않고 감정의 겉을 맴돌지 않으면서 그 안창의 감동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오래 기억될 작품인즉 입안에 외워 속삭여주고 싶다.

고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