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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지켜지지 않은 약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30분에 1백30여명의 사상자.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누가 폭탄을 터뜨린 것도 아니고 자동소총을 무차별 난사한 것도 아닌데 눈깜짝할 사이에 꽃다운 생명들이 스러졌다.

호프집에서 끼리끼리 술 마시고 놀던 중.고생들은 갑작스럽게 달려든 화마(火魔)로 우레탄폼이 내뿜는 유독가스를 견디지 못해 질식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맞이했고, 또 어떤 이들은 치명상을 입었다. 비교적 가벼운 상처로 목숨을 구한 이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조목조목 따져 보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행정당국에 의해 무허가 영업으로 적발돼 폐쇄명령을 받고서도 버젓이 영업을 한 호프집, 소방시설도 제대로 없는 건물, 미성년자에게는 술을 팔 수 없는 법을 어긴 종업원,가서는 안될 장소에 간 청소년들….

엄청난 충격 속에 누구는 안전불감증을, 누구는 '돈' 밖에 모르는 세태를 탓하고 누구는 변변한 놀이문화를 갖지 못한 청소년의 현실을 개탄한다. 또 어떤 이들은 연소때 시안화수소를 내뿜는 우레탄폼을 내장재로 쓰게 하고 4층 이하 건물에 별도의 비상계단이 없어도 되는 건축법의 미비를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실업계 고교생들이라는 점에서 '대학진로가 막혀버린 청소년들의 방황' 을 지적하며 이들을 위한 직업교육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재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절망스럽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들의 근간에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 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런 문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건의 원인은 단순하다. 모든 것이 '규칙대로' 집행되지 않은 탓이다. 당국의 폐쇄명령을 받은 영업주는 영업장을 폐쇄했으면 그만이고, 소방법대로 창문을 여닫을 수 있었으면 됐으며, 청소년들은 '금지된 장소' 에 가지 않았으면 되는 것이다.

설혹 청소년들이 금지된 장소에 갔더라도 종업원이 '법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면, 나아가 술을 팔지 않았다면 청소년들은 더 이상 그 장소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런 규칙을 단 한쪽만이라도 지켰다면 이렇듯 엄청난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누구도 '지켜야 할 규칙' 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의 규칙은 현실과는 너무 먼 거리에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영업장 폐쇄명령을 지키지 않고 영업할 때 물어야 하는 벌금보다 불법영업을 감행해 얻는 소득이 클 때 폐쇄명령을 지킬 영업주는 없다.

박봉에 일감마저 엄청나다면 단속반의 법집행도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종이 호랑이 같은 행정명령이 지켜지길 바란다는 것은 영업주의 도덕성을 과신하는 어리석음일 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이번 사건에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청소년의 '탈선' 도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더 이상 어른들의 이상(理想)의 눈으로 현실의 청소년을 재단(裁斷)하지 말아야 한다.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어 가수나 탤런트의 '오빠(혹은 누나)부대' 로 나서거나 어른들의 유흥문화를 흉내내 술집을 드나드는 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피우는 문제아 집단' 만인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아들 딸' 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행 법과 규칙이 정하고 있는 소방시설 등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먼저이듯 '내 아이가 설마' '우리 아이는 절대로 아니야' 하는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청소년 문제의 해법은 시작된다고 여긴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현실 따로, 규칙 따로인 사회의 이중구조 속에서는 지켜야 할 규칙이라도 '위반해도 그만' 이라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지켜지지 않는 규칙은 없느니만 못하다. 법과 규칙을 위반하는 것에 둔감해지는 '죄의식의 상실' 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나부터 작은 규칙이라도 지키자는 다짐은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는 너무나 잦은 '규칙위반' 앞에 너무나 공허하기만 하다. 이제라도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규칙과 현실간의 괴리를 줄이는 재작업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을 이상적으로 보호할 수 없는 사회라면 차라리 안전한 곳에서 바르게 술을 마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낫다고 한다면 지나친 역설일까.

홍은희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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