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열린우리 '의정연구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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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정권의 핵심 386그룹과 삼성경제연구소 사이에는 은밀한 작업 하나가 진행 중이다. 스토리는 이렇다.

노 대통령의 집권 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은 약 2개월 전 연구소의 고위 간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당 386 의원 몇몇이 의정연구모임을 만들려고 합니다. 화두로 다룰 수 있는 '한국경제 성장동력 10대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십시오."

주문은 꽤 구체적이었다고 한다. 법인세 인하나 규제완화 같은 익숙한 얘기가 아니라 정보기술(IT)산업의 새로운 돌파책이나 지방산업의 비책 같은 거였다는 것이다. 연구결과는 다음달 중순 '의정연구센터'라는 일부 386 의원 모임의 세미나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노무현 정권 내 386'과 삼성경제연구소 간의 교류는 여권 내부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사 정리나 보안법 수술 같은 정치성 현안에 못지않게 경제도 중요하며 오히려 이에 주력하겠다는 의원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오랫동안 숙성됐다. 이광재 의원이 스스럼없이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 386 의원들과 연구소 사이에는 여러 차례 시장경제 활성화 토론이 있었다.

'의정연구센터'는 열린우리당 내 다른 모임들과 성격이 다르다. 1970년대 재야.운동권과 80년대 전대협 운동권 출신들이 만든 기존 조직들은 정치 현안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반면 '의정연구센터'는 경제.성장.규제완화.의정개혁을 1차적인 주제로 삼고 있다.

이 모임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회원 12명 중에 이른바 '노 대통령의 4인 친위그룹'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4인은 이광재.서갑원.이화영.백원우 의원이다. 이들은 노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광재.서갑원).비서관(백원우)이나 노 대통령이 93년에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연구원(이화영)으로 일했다. 2002년 대선 때 대통령 후보의 기획팀장(이광재).정무특보(서갑원).업무조정국장(이화영).정무비서(백원우)로 뛰기도 했다.

경제에 주력하는 친위그룹의 방향 설정은 노 대통령의 노선과는 거리가 있어 의외라는 느낌도 준다. 갈 길이 바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과거사에 매달리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화영 의원은 "대통령은 갈등을 정리한 뒤 연말에 '사회 대타협'을 선언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는데 노심(盧心)이 정말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

김 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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