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씨에 남는 의문2제] 왜 말 자꾸 바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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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의 말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는 언론장악 문건에 대해 "문일현(文日鉉)씨가 중앙일보 간부와 상의해 문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녹취록도 있다" 고 28일 국민회의 의원총회에서 비공개를 조건으로 주장했다고 참석자들이 밝혔다.

그럼에도 29일에는 "녹취를 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와전됐다" 고 말을 바꿨다.

李부총재는 또 27일 저녁 기자회견에서는 "문일현씨와 6월에 통화를 한 기억이 없다" 고 주장했었다.

그러다 29일 오전 기자들이 "정말 통화한 적이 없느냐" 고 추궁하자 "나중에 확인해 말하겠다" 고 물러섰다.

文씨는 인터뷰에서 "李부총재가 안부전화를 했고, 당시 언론상황을 걱정하기에 내 의견을 정리해 보내줬다" 고 밝힌 바 있다.

李부총재는 29일 기자들에게 "말을 아끼려고 한다. 본인(이도준씨)에게 듣는 것이 제일 좋다" 며 입을 닫기도 했다.

석연치 않는 대목은 이 뿐만이 아니다. 李부총재는 "문건이 내게 오기 전에 탈취당해 보지 못했다" 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말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

文씨가 보고서를 보낸 시점은 6월 24일. 이도준씨는 복사한 시점에 대해 "7월(29일 0시10분쯤 회견)" 과 "6월말(29일 오전 10시 회견)" 이라고 두가지 진술을 했다.

최소한 1주일 이상 문건이 李부총재 사무실에 있었음이 분명하고 그 이후에도 李부총재측은 문건을 보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건은 복사하고 도로 갖다놨다" 는 李씨 주장대로라면 문건이 李씨에게 '탈취당해' 사라진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다음은 편지의 행방이다. 文씨는 당초 보고서 7쪽과 편지 3쪽을 팩스로 보냈다. 文씨는 李부총재와의 통화에서도 "서신 3장도 함께 보냈다" 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李씨가 李부총재의 사무실 서류철에서 찾아낸 문건에 편지는 없었다. 문건 7쪽만 있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선 李부총재가 편지를 읽어본 뒤 폐기했거나 별도로 보관했고 비서진에게는 언론장악 문건만 챙겨두도록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현실에 정책으로 반영된 것 아니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결코 아니다" 고 잡아뗀 李부총재의 부인도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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