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총리 사살범 투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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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예레반〓외신종합, 김정수 기자] 아르메니아 국회 의사당에서 총기를 난사, 바즈겐 사르키샨(40)총리 등 9명을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이던 무장괴한들이 28일 50여명의 인질을 모두 풀어주고 투항했다.

범인들은 로베르트 코차랸 대통령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생명보장과 공정한 재판을 약속받은 뒤 경찰에 연행됐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5명의 무장괴한들은 27일 오후 5시15분(한국시간 오후 9시15분)쯤 대정부질문이 벌어지고 있는 의사당에 난입했다. 이들은 연단에 서있던 사르키샨 총리에게 다가가 "쿠데타가 일어났다" 고 외치며 국회의원들을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총기를 난사했다.

목격자들은 범인들이 "이제 우리의 피를 그만 빨아먹어라" 고 위협했으며, 사르키샨 총리가 "모든 것이 너와 너의 자손들을 위한 것" 이라고 담담히 대답하자 총기를 난사했다고 전했다.

이번 범행은 극렬 학생운동권 출신인 나이리 우나냔(34)과 동생.삼촌 등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나냔은 예레반 대학교 재학시절 '카라바흐 노을운동' 이라는 재야단체에 가담, 각종 시위와 파업을 주도했으며 한때 기자로도 활동했다.

우나냔은 동료들과 함께 의사당 내에서 9명을 살해한 뒤 곧바로 50여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그는 현지 TV방송인 A1플러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 며 대대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해결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질 것" 이라며 "사르키샨 총리의 죽음은 아르메니아에 진정한 슬픔" 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도 분노를 표하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 지난 6월 코차랸 대통령에 의해 총리직에 임명된 사르키샨은 불과 4개월만에 테러에 희생됐다.

체육교사.언론인 출신의 그는 지난 90년 아제르바이잔과 벌인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때 아르메니아 반군을 이끌었으며 91년 국방장관에 올랐다.

사르키샨은 지난 5월 공산당 당수 출신의 드리르치얀 의장과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강경노선의 '단합당' 을 결성, 총선에서 승리했다.

그는 '예르크라파(조국 수호자들)' 라는 민병조직과 깊은 연대를 맺어 왔는데 이 조직은 종교단체를 억압하고 있다는 이유로 서방 인권단체의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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