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5F 전투기 추락파장 증폭] 곳곳서 '물샌' 전투기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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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F-5F(제공호) 전투기 추락사고의 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연료로 기름 대신 맹물을 넣은 사고가 단순한 실수가 아닌 군기 해이에 따른 총체적 관리부실이라는 지적에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공군 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사고는 16비행단의 5만배럴짜리 지하 유류탱크의 바닥에 생긴 균열이 발단이 됐다. 길이 2㎝.폭 2㎜ 크기의 틈이 벌어진 것이다. 조사위는 지난 8월 중순 이 탱크에 있는 기름을 이보다 작은 1만배럴짜리 탱크 4개에 나눠 담는 과정에서 탱크 아래쪽 기름과 물이 동시에 3번 탱크에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규정에 따르면 비행단은 탱크에 들어간 물을 제거하는 드레인작업을 매일 해야 한다. 밸브만 틀어주면 자동으로 되는 간단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비행단은 드레인작업을 한달 동안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군측은 이같은 문제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는 것이다.

또 '급유시설 운영규칙' 에 따르면 비행단은 분기별로 유류탱크의 내부를 조사, 금이 갔거나 구멍이 난 곳이 없는지 검사해야 한다. 비행단측이 만일 이 규칙을 지켰다면 5만배럴짜리 탱크 바닥의 균열을 발견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탱크 속에 물이 있었더라도 길이 2.4㎞의 송유관 끝에 부착된 수분여과기를 작동시켰으면 물이 연료로 주입되는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그런데 이마저 고장났다. 전투기 엔진은 물 섞인 기름이 약간만 들어가도 정지하기 때문에 수분여과기의 성능을 항상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도 수분여과기가 고장난 이유에 대한 공군측의 설명은 없다. 군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불량품이 들어왔거나 교환시기가 지난 여과기를 정상적으로 교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마지막 주유단계로, 유조차로부터 전투기에 기름을 주입하기 전에 정상적인 기름인지 확인하는 샘플링 검사도 빼먹었다. 공군측은 이 검사과정을 생략했다고만 말하고 있다.

사고조사 결과에 대한 은폐 의혹은 공군이 지난달 말 사고조사를 끝내고도 막상 언론에 터져나가자 뒤늦게 설명했다는 점 때문에 제기되고 있다.

공군은 조성태(趙成台)국방부장관에게 두차례에 걸쳐 전화로 보고했다는 해명성 발언만 반복, 보고를 지연한 의심을 받고 있다.

한편 전투기가 맹물을 사용해 떨어진 사실을 뒤늦게 안 숨진 부조종사 박정수(26)대위의 유족들은 원인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아버지 박송웅(55)씨는 "무엇보다 공군측이 그동안 기체결함이라고 속여온 것이 너무 괘씸하다" 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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