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장악' 문건의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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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폭로한 정부의 이른바 언론장악기도 문건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여권과 문서 작성자로 지목된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정무수석은 '조작' 이라며 사법대응을 공언하는 반면 鄭의원과 야당은 대통령의 사과와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등 즉각 가파른 대치국면에 돌입하고 있다.

앞으로 이 쟁론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매듭될지에 정국의 향방은 물론 권력과 언론간의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李전수석이 '성공적 개혁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방안' 이라는 문건을 작성해 여권 실세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鄭의원 폭로의 사실 여부에 대해선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고자 한다.

鄭의원은 제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추가폭로 자료까지 있다고 확언한 데 반해 李씨와 여당은 그런 보고를 작성.보고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입수경위를 밝히라고 다그치고 있어 어느 한쪽도 결정적으로 옳다고 입증할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진실규명이다. 그런 점에서 여당이 鄭의원의 대정부질문 도중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조작' 이라고 반발한 것은 아무래도 성급했다는 인상이다.

그리고 여당측이 폭로자를 인신공격하고 그의 경력을 들어 '조작' 의 근거로 제시한 것도 진실규명의 의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더욱이 진실규명도 해보지 않은 채 면책특권이 있는 원내발언에 대해 사법대응을 하겠다는 것도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鄭의원도 제보자의 보호를 위해 문건의 입수경위를 정확히 밝힐 수 없는 고충이 있겠지만 문건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최대한 성실하게 설명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여야는 지금과 같은 저급한 공방전을 즉각 끝내고 진상규명에 이성적으로 임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 문건 내용의 상당부분이 우리 경험과 방불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앙일보사태와 관련해 시중에 떠돌던 정부의 언론통제 시나리오가 이 문건의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문건은 개별 언론사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통제의 효과적인 수법으로 분리.타격을 가해 언론사의 공동대응을 차단해야 하며, 주요 사정기관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鄭의원은 중앙일보사태는 이 문건 그대로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점에서 문건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정부의 언론통제 의혹은 증폭되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정부의 언론통제 의혹이 전혀 없었다면 鄭의원의 폭로 자체가 한낱 웃음거리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시민.언론단체 등이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등 그렇지 않은 것은 뭘 뜻하는가.

정부와 여당이 부인만을 능사로 할 사태가 아님이 명백해진 셈이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정말 이 문건이 사실이 아닌 '조작' 이 분명하다면 그걸 밝히기 위해서라도 진실규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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