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소래중 2년 나하정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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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직장에 나가시는 엄마가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인다. 아빠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엄마의 귀가시간이 부쩍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맏딸이 되어서 그런지 엄마의 피곤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이나 들었다.

그래서 학교에 갔다 오면 집안청소부터 시작해 동생 돌보는 일까지 모두 내가 도맡기로 했다. 엄마는 돌아와 씻고 저녁 식사후 주무시기만 하면 되도록 말이다.

지난 10월 10일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마흔네번째 생일이었다. 지난해에는 종이장미를 1백송이 접어드렸고 모아둔 용돈으로 화장품을 선물했다.

올해는 뭘 준비할까 궁리 끝에 시계를 택했다. 엄마가 매일 차고 다니시면서 볼 때마다 내 생각을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화려하고 비싼 시계는 아니었지만 돼지저금통에 두달간 푼푼이 모은 동전으로 샀다는 것이 가슴 뿌듯하다.

특히 이번 엄마 생일에는 내가 이 세상의 햇살을 본 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요리' 라는 것을 했다. 종목은 미역국. 집에 있는 요리책을 보고 미역 등 재료를 사와 하나씩 씻고 다듬다 보니 떨리던 마음은 어느새 기쁨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간을 보는 시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맛을 보았다. 처음이라 그런지 밋밋하고 싱거웠다.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다시 맛을 보았다.

세상에! 이번에는 너무 짜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엄마의 초인종 소리가 울렸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미완성 미역국' 을 엄마의 생일상에 올려야 했다. 상을 받으신 엄마는 나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하정아, 네가 엄마냐 내가 엄마냐. " 그리고는 나를 꼭 안아주셨다. "엄마, 아들 없는 우리집 제가 아들노릇 하면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사랑해요. "

소래중 2년 나하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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