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대되는 인터넷 민원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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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집을 짓거나 영업허가를 내기 위해 관공서 문을 두드려본 사람이라면 민원이 제대로 처리될지 몰라 조바심을 느낀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담당 공무원을 직접 찾아가거나 연줄이 있는 사람을 통해 특별히 부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심지어는 돈을 줘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마음이 조급한 민원인 입장에서는 관공서 안에서 이뤄지는 민원처리 절차를 잘 모르니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은 뻔하다.

이같은 심리를 악용해 돈이나 향응을 챙기는 공무원들이 생겨나면서 불필요한 규제가 늘고 당연한 민원처리에도 급행료가 확산되는가 하면, 불법을 눈감는 대가로 뇌물이 건네지는 부조리가 우리 공직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공직자 부패가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는 원인은 공직사회의 혁신노력이 미약하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공직개혁은 공직자의 의식전환과 행정의 투명성이 두 축이다. 그중에서도 후자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행정절차를 시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높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4월 서울시가 개설해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방' 은 매우 획기적인 장치라고 할 만하다.

이 방에 들어가면 서울시 본청과 25개 구청에 접수된 건축.주택.위생.소방.건설공사 등 민생 부조리 취약분야를 포함한 10개 분야 27개 업무의 민원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결재라인이 어떻게 구성돼 있으며 현재 어느 단계에서 처리 중이고 언제쯤이면 결과가 나오리라는 걸 집에 앉아 컴퓨터로 확인하고 문의도 가능하도록 한 시스템이다.

민원처리 과정이 공개됨으로써 민원인들의 궁금증이 해소되고 민원처리 속도가 높아지는 행정서비스 혁신책일 뿐만 아니라 감독자의 입장에서는 민원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리 가능성을 포착할 수도 있다니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그동안 지방자치시대 개막 이후 각종 행정서비스 개선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민원처리 공개방' 은 그중 백미(白眉)라고 할 만하다. 정부는 이 시스템을 중앙부처와 전국의 자치단체에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반부패국제회의에서도 국제투명성위원회로부터 우수사례로 인정받아 선진 외국에서도 도입에 관심을 표시할 정도였다니 이 시스템 운영에 기대가 크다.

물론 이 시스템이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출발에 불과한 만큼 서울시가 마련한 기초 위에 중앙정부와 모든 자치단체가 기능과 영역을 확대해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조리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길 바란다.

그러면 부패척결에 관한 공직자의 의식개혁도 빨라질 것이다. 컴퓨터 사용 보편화로 촉진된 투명성시대에 걸맞게 행정개혁의 모범을 보여준 서울시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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