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이 두 번 놀란다 … 한 번은 자전거를 보고, 또 한 번은 빨라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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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08면

“고객들이 두 번 놀란다. 자전거를 보고 먼저 놀라고 배달이 빠른 데 또 놀란다. 가격·속도 모두 오토바이 못지않다.”국내 유일의 자전거 퀵서비스 회사인 ‘바이시클 쿠리어’를 운영하는 변국종(42,사진) 사장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 5월 회사를 차린 뒤 넉 달여 만에 15명이던 소속 직원(메신저)이 120명으로 늘었다. 아직 맘에 차진 않지만 고객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뉴욕이나 런던에선 수천 명씩이 자전거 메신저로 활동한다. 사고가 잦고 위험한 오토바이를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자전거 퀵서비스 ‘바이시클 쿠리어’ 변국종 사장

변 사장은 자전거 매니어다. 도심에서 강남까진 20분, 일산까지 40~50분이면 간다. 취미로 타던 자전거로 일을 하고 싶어 10년 전 퀵서비스 회사에 지원했다. 남들이 다 오토바이를 타는 동안 그는 국내에서 유일한 자전거 메신저로 활동해 왔다. 회사를 차린 것도 자전거의 가능성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용하는 고객들이 그에게 먼저 묻는 게 ‘속도’다. 경쟁상대인 오토바이보다 ‘당연히’ 느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변 사장의 답이다. 도심에서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평균 속도엔 차이가 거의 없다. 교통신호와 정체 탓이다. 자전거 배달 시간은 광화문에서 강남구청까지 40분, 구로구 독산동까지 50분가량 걸린다.

고객이 전화를 한 때부터 배달이 끝나기까지에 걸리는 시간은 자전거가 오히려 빠른 경우가 많다. 오토바이 메신저는 자기에게 유리한 일감을 고른다. ‘빈 차’로 돌아올 가능성이 큰 지역은 가려고 하지 않는다. 배달 시간보다 배달할 사람을 찾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자전거 메신저는 이런 시간 낭비가 없다. 돈만이 목적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달리므로 고객의 호출에 바로 응답한다. 장거리는 릴레이 방식으로 배달한다. 도심에서 일산까지 물건을 보낸다면 수색과 일산 초입 등에서 메신저끼리 ‘바통터치’가 이뤄진다. 요금은 오토바이 퀵서비스와 비슷하다. 서울 사대문 안 기본요금이 6000원, 광화문에서 강남역까지는 1만~1만2000원이다.

이런 장점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 일감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하루 30~40건을 의뢰받는다. 상근하는 메신저 30명이 하루에 한 번 일감을 받는 수준이다. 나머지는 집 근처에서 일감이 나올 때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한다. 사람 관리도 하고 직접 메신저로 일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변 사장이 짬을 내 정부와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전거로 취미와 일을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부와 기업의 관심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 번 이용해 보고 만족했던 개인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특히 아쉬워하는 것은 정부의 태도다. 얼마 전 서울시에 일감을 좀 달라고 요청하자 곤란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자전거 길이 다 완비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청와대나 정부부처에도 여러 번 e-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했지만 반응이 비슷했다. “자전거 정책을 편다는 정부에서 한군데도 도와주는 곳이 없더라. 자전거를 이용해 일자리를 만드는 일인데 왜 그리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다.” 변 사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인프라를 다 깔고 난 뒤 활용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식으론 정책이 성공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공기 안 더럽히고, 기름 안 쓰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게 자전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류를 주고받는 일이 많은 기업도 아직은 익숙한 오토바이 메신저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변 사장은 자전거 메신저의 성공을 확신한다. 돈벌이론 그다지 매력이 없는데도 회사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방학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10대 고등학생부터 소일거리를 찾는 70대 할아버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30~40대 주부와 프리랜서도 많다. 이달 초 일하기 시작한 주부 박혜영(55)씨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운동을 하는데 용돈까지 벌 수 있으면 금상첨화 아니냐”고 했다. 변 사장은 “해왔던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시작했던 일”이라며 “돈 욕심보다는 진짜 ‘그린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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