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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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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달 26일 이명박 대통령은 태평양 위를 날고 있던 전용기 안에서 만세삼창을 했다. 미국 피츠버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귀국하던 길이었다. 수행한 장관·참모도 모두 일어나 함께 외쳤다. 한국이 2010년 5차 G20 회의를 유치한 것을 기념해서다. G20은 과거 선진 8개국으로 이뤄진 G8을 대신해 세계경제의 판을 짜는 새 무대가 됐다. 여기 낀 것만도 대단한데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주도하게 됐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만했다.

지난 6~7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연차총회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은 녹초가 됐다. 밀려드는 면담 요청 때문이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뿐 아니라 과장급까지 나서야 했다. 약속시간도 30분 단위로 쪼갰다. 신제윤 차관보는 미 국무부 차관을 만났다. 1년 전만 해도 한국 장관이 매달려도 만나줄까 말까 했던 미국 차관이 먼저 면담을 제안했다.

9월 2일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올렸다. 1년 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두 달 만에 낮췄던 걸 원상회복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피치가 신용등급이나 전망을 깎은 37개국 중 이를 회복한 나라는 한국과 우루과이 2개국뿐이다.

지난달 2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만났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국제원자력기구를 방문 중이었다. 반 총장은 그에게 “내년 예산 배정 때 유엔 분담금을 꼭 넣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한국이 내는 유엔 분담금은 전체의 2%인 2억 달러. 경제 규모가 4분의 1인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나마 해마다 밀려 ‘상습 체납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 반 총장의 측근은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분담금을 안 내는데 총장이 어떻게 다른 나라에 분담금을 독촉하겠느냐”고 말했다.

한국 유엔대표부의 박은하 참사관은 유엔에서 인도적 지원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2007년 12월 유엔총회가 채택한 인도적 지원 결의안에 ‘여성을 고려한다’는 문구를 넣은 것도 그다. 그러나 막상 돈 문제만 나오면 그는 얼굴을 못 든다. 지난해 한국이 국제기구에 낸 인도적 지원금은 3000만 달러. 전체의 0.25%였다. 그나마 절반은 북한에 주라고 꼬리표를 붙인 돈이었다. 올 10월 11일까지 한국이 세계식량기구(WFP)에 준 지원금은 530만 달러. 904만 달러를 낸 케냐의 절반 수준이다.

유엔평화유지군(PKO)으로 레바논에 간 한국 동명부대는 현지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1주일에 두 번 여는 태권도 교실 덕이다. 마을 도로를 포장하고 회관을 지어준 것도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동명부대원은 총 359명으로 전체 PKO의 0.5%도 안 된다. 30차례에 걸쳐 2만여 명의 PKO를 파견한 브라질에 한참 뒤진다. 유엔에서 PKO 덕을 가장 많이 본 국가는 6·25를 겪은 한국이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