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대머리 없어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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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80년대 초 제5공화국의 군사정권이 출범하면서 한 TV탤런트가 방송국으로부터 느닷없이 '출연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유를 물을 수조차 없었으나 당사자는 물론 대개의 시청자들은 그 까닭을 알 만큼 알고 있었다.

그는 당시 대통령과 너무 닮아 있었고, 특히 대머리였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기름장사 등으로 연명했다는 그는 복권(復權)한 뒤 이렇게 항변했다.

"도대체 대머리가 무슨 죄란 말입니까. " 권력의 코믹하고도 비정상적인 측면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탤런트의 항변 그대로 대머리는 죄일 수 없고, 당사자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탈모증은 대체로 유전적인 요소가 강하고, 밝혀진 원인만도 수십가지에 이르고 있으나 아직 밝혀내지 못한 원인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20명의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은 스무살이 넘으면 이마가 벗겨지기 시작하며, 6명 가운데 한사람은 머리 꼭대기 한가운데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는 통계가 나와있다.

물론 탈모증이 신체상의 어떤 이상(異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의 기능이란 감각기로서의 촉각을 예민하게 한다거나, 주위의 신경종말(神經終末)을 자극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활동하는 데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머리가 마치 '트레이드 마크' 처럼 붙어 다니는 저명인사도 많다. 옛 소련의 총리를 지낸 흐루시초프와 대통령을 지낸 고르바초프, 프랑스의 정치가 쉴리와 작곡가 사티, 그리고 독일의 석학 슈펭글러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그 희소성은 여전히 문제다. 당사자들은 '정상' 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일부러 머리를 박박 밀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젊은 연예인들도 있지만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발모촉진제를 사용한다든가 가발을 쓰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게 마련이다. 중국에서 개발했다는 발모촉진제와 미국에서 개발된 스파이로놀락돈이란 이뇨제(利尿劑)가 특효라 하여 한때 크게 인기를 모았지만 그나마 지금은 시들해졌다.

최근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생쥐를 상대로 털 발육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를 털이 나지 않는 부분위에 주입, 털이 나게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대머리 치료에 획기적인 새 장을 열었다고 떠들썩하다. 현대의학이 대머리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이제 세계 각국에 결성돼 있는 독두회(禿頭會)는 당연히 존재의미가 없어진다.

반면 희소가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탈모제(脫毛劑)가 큰 인기를 끌는지도 모르니 참으로 재미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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