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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이는 '은빛 꿈'-억새여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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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가을산은 단풍으로 시작하고 억새로 마무리한다.

꽃이 오므라들듯 10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는 요즈음 산등성이에 흐드러지게 핀 억새는 가을산을 '갈색추억' 으로 곱게 장식한다.

한라산 너른 품에 안긴 제주의 3백60여개 오름에는 억새가 향연을 펼친다.

은빛꿈 너울대는 억새밭에 하오의 햇살이 엷게 비추고 바람따라 서걱서걱 울어댈때면 가을은 어느덧 깊어만 간다.

지금 제주는 세월도 비껴가고 있다. 제주의 가을은 오색단풍이 아니라 화사하게 핀 봄의 벚꽃처럼 흰색으로 채색되고 있다.

북제주군 조천읍에서 산굼부리~영아리오름을 거쳐 남제주군 남원읍까지 이어지는 '남조로' 양옆은 바람따라 흔들리는 억새가 소리없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제주의 가을은 어딜 가든 억새를 감상할 수 있지만 그중 산굼부리.삼다수생수공장.남조로가 첫손에 꼽히는 명소다.

거대한 산에 생긴 구멍(굼)이라는 뜻의 산굼부리(4백38m)는 자연 분화구로 가을이면 주변이 온통 억새밭으로 변한다. 연중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며 최고의 촬영장소로도 손꼽힌다.

삼다수생수공장옆 억새평전에서는 제주도관광협회(064-742-8861)가 주최하는 '제주억새꽃 축제' 가 16~18일까지 펼쳐진다.

올해 6회째를 맞으며 그림그리기.노래자랑.걷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돼 있다.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억새꽃을 감상하기로는 '남조로' 가 단연 으뜸. 북제주군 조천읍과 남제주군 남원읍을 잇는 '남조로' 는 한낮에 조천에서 남원방향으로 승용차를 몰아야 억새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한라산을 오른편으로 끼고 돌면 길은 서귀포 앞바다를 향해 내달리고 도로 곳곳에 가을의 체취가 묻어난다.

해질무렵에는 마사회경주마육성장이 가장 분위기가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초지에 방목된 말과 억새꽃의 아름다운 풍광속에서 가을의 넉넉함을 맛볼 수 있다.

한편 이맘 때면 남제주군 어디서나 돌담너머로 고개를 내민 노란 감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10월하순부터 시작되는 감귤수확은 내년 1월까지 계속되며 대장정여행사(02-3481-4242)에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감귤농장에서 감귤을 따는 '체험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밖에 전국 유명 억새산행지로는 영남 알프스.민둥산.두륜산.명성산.천관산 등이 손꼽힌다.

'영남 알프스' 는 백두대간에서 빠져나온 낙동정맥이 동해로 꼬리를 감추기 전 여력을 다해 빚어놓은 곳으로 가을철 최고의 억새산행지다.

최고봉인 가지산을 비롯 운문산.천황산.재약산.신불산.취서산.간월산등 1천m가 넘는 7개의 고산과 수많은 봉우리로 형성돼 있다.

배냇재(6백70m)에서 30분거리에 배냇봉이 있고 여기서 2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면 신불평원에 다다른다.

수십만평 너른 신불평원에는 억새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민둥산(1천1백19m.강원정선군남면)은 정상 부근이 나무 한그루없는 벌거숭이 산으로 정상부근 수십만평의 평원에 억새천국이 펼쳐진다.

산세가 둥글둥글하고 등산로가 평탄해 초보자도 쉽게 산행할 수 있어 가족산행지로 적격이다. 4시간정도 소요. 두륜산(7백3m)은 땅끝마을.고산 생가와 함께 해남군의 유명 관광지로 손꼽힌다.

가련봉과 두륜봉사이 헬기장부근에는 사람키보다 높은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오심재~능허대~가련봉~두륜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올라서면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반긴다. 4시간정도 소요. 포천군과 철원군 경계에 솟아 있는 명성산(9백22m)은 자인사를 지나 무너질듯한 암벽길을 따라 2시간여를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서 안덕재쪽으로 펼쳐진 수만평의 억새밭은 망망대해를 이루며 바람결에 휩쓸리는 광경이 장관이다. 총 거리 9㎞.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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