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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심 달아날라…경제현안 열중쉬엇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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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정권이든 선거에 신경쓰지 않고 정책을 편 정권은 없었다. '국민의 정부' 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조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긴급한 현안이라도 득표에 불리할 것 같으면 우선 늦춰 놓고 보거나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거가 끝난 후에 문제들이 한꺼번에 곪아 터져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세금보다 표가 우선〓세제는 정치적인 고려가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다. 우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8.15경축사 후속조치로 공평과세 차원에서 추진됐던 전용면적 50평 이상 74평 미만, 거래가 6억원 이상 고급아파트에 대한 취득세 중과세 방침이 철회됐다.

이에 앞서 재경부는 50평 이상, 5억원 이상 고급아파트에 대해 실거래 가격으로 양도세를 매기는 방안을 세제개혁안으로 올렸지만 당정협의과정에서 적용기준이 6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됐다. 이 경우 중과세 대상은 거의 없어진다.

현행 기준(5억원)으로도 호화주택 중과세 실적은 96년 24건 9억원, 97년 26건 11억원, 98년 43건 12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또 단독주택에 대한 상속.증여세 산정 기준을 지방세법상 시가표준액(시가의 30% 수준)에서 국세청 기준시가(시가의 60~70%)로 바꾸는 시기도 내년 1월에서 총선 이후인 7월로 6개월 연장됐다.

소주세율 역시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은 이번 국정감사 등을 통해 정부가 80%로 인상하려는 소주세율을 10%포인트 이상 낮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총선에 악재로 작용하니 2000년 7월 1일 이후로 시행을 연기해달라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여러 번 요청했으나, WTO측에서 한국의 총선과 주세조정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거절했다" 는 정부 관계자의 고백이 주세율의 '정치성' 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내년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인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 폐지 시기도 2001년 이후로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재경부 내에서도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 득표(得票)용 정책은 강행〓정권이 중요한 '지지기반' 으로 간주하는 공무원을 겨냥한 공무원 연금기금 출연이 대표적인 예. 정부는 지난달 21일 국무회의를 거쳐 정부예산안을 확정하면서 1조원에 달하는 공무원연금기금 융자 건은 슬그머니 발표문에서 빼버렸다.

연금지급액 축소나 부담금 증액 등 제도개선 없이 무작정 지원하는 것에 반발하는 여론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정부는 재정파탄에 직면한 공무원연금의 지급불능 사태를 막기 위해 법정부담금 외에 내년중 1조원을 무이자에 5년거치 5년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융자해주기로 했지만 연내 실시를 약속했던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은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 표 안되면 늦춰라〓투신사 처리나 공공요금 인상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우사태로 촉발된 투신 위기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손실부담을 포함한 투신 부실채권 처리방침 확정, 투신사 구조조정 및 필요시 공적자금 투입 등의 강도 높은 처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부는 돈을 풀어 채권을 사게 해서 금리를 끌어내리는 등 땜질식 처방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미봉책의 배경에는 당장 손실을 분담시킬 경우 예상되는 투자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연내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 억제하려는 정부 정책도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자부는 10월부터 전기요금을 평균 7% 인상키로 했으나 재경부 등 물가당국과 여당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요금을 각각 14.2%.11.1% 올려야 한다는 건교부의 인상안도 내년 이후로 미뤄졌으며, 의보수가.우편요금.철도요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8일 열린 경제대책 조정회의에서 올 물가상승률을 당초 2%목표에서 1.5%로 하향조정했다. 그만큼 올해 물가관리 여건이 좋음에도 공공요금 인상은 한사코 내년 이후로 미루고 있는 것이 과연 경제논리에 입각한 정책이냐는 지적이 많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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