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벅지’ 진짜 문제는 ‘꿀’ 속에 담긴 욕망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에서 발생한 신조어 ‘꿀벅지’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던 바 있다. 발단은 한 여고생이 “‘꿀벅지’라는 용어가 수치심을 유발하니 최소한 언론에서만이라도 자제를 부탁한다”며 여성부 홈페이지를 통해 청원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꿀벅지’라는 용어의 어원을 묻는 질문과 ‘꿀벅지’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꿀벅지’라는 말은 주로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 붙여졌다. 보통 여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경쟁적으로 짧은 바지 혹은 치마를 입은 채 선정적인 춤을 추며 눈길을 끈다. 허벅지를 시원스레 드러낸 아이돌 그룹 멤버들 중에 소녀시대의 티파니와 애프터스쿨의 유이에게 꿀벅지라는 용어가 붙여졌다. 유이가 ‘꿀벅지’라는 수식어에 대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나타낸 것도 따지고 보면 어쨌든 우월한 허벅지로 공인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꿀벅지’란 용어가 널리 퍼진 것은 흔히 유행하는 신조어와 같은 방식으로 ‘꿀벅지’ 또한 그저 단순한 ‘매력적인 허벅지’라는 의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티즌들에 의해 ‘꿀벅지’라는 말의 또 다른 어원이 제기되며 사용에 제동이 걸렸다. 네티즌들은 ‘꿀벅지’는 단순히 매력적인 허벅지가 아닌 ‘꿀을 발라 핥고 싶다’는 남성들의 욕망이 개입된 단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꿀’이 아니었다. ‘꿀’ 뒤에 숨겨진 남성의 욕망이었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됐다. '매력적인 여성의 허벅지를 보면서 생기는 남성의 욕망이 잘못된 것이냐'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는 측은 남성들의 시선 속에 잡힌 여성들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한 인터넷 논객은 대중들이 자신들의 욕망은 괜찮고 소녀들의 욕망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증거로 든 것은 한때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비디오 유출 사건’이다. 백지영은 데뷔 이후 섹시한 이미지로 사랑을 받아온 가수다. 그러나 비디오 유출 이후 그녀는 이미지가 실추된 채 오랜 기간 활동을 접어야 했다. 섹시한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던 가수에게조차 섹스를 허용하지 않는 것에 네티즌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대중들이 TV 속의 그녀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길 원하지만 그녀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허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측은 욕망보다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한 인터넷 논객은 경쟁적으로 벗기기를 하는 TV 속의 이미지들의 존재는 외면한 채 용어만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논객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욕망을 규제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했다. 실제 성적인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가 용어규제라는 간편한 수단을 통해 비난의 화살을 피해간다는 것이다.

‘꿀벅지’의 문제는 단순히 ‘꿀벅지’라는 용어를 쓰도록 허용하느냐, 허용하지 않느냐의 문제를 이미 넘어섰다. 이제 문제는 그 속에 담긴 욕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어차피 스타는 대중들의 욕망을 먹고 산다. 그들을 지켜보는 남성들에게 스타들은 대리 만족의 대상이 되고, 여성들에게는 그들을 닮고 싶다는 욕망을 부추긴다. [뉴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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