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의회서 먹고 자고…美'알뜰의원'많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잭 킹스턴 의원은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보험대행업을 하다 하원의원이 된 미국의 정치인이다. 44세의 젊은 나이지만 어엿한 4선의원이다.

그는 현재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기숙한다. 워싱턴 인근에 별도로 거처할 곳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지역구민들 가운데 일부는 "웬 궁색이냐" 며 못마땅해 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촌각을 아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려는 모양" 이라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킹스턴 의원이 '집없는 천사' 가 된 것은 굳이 집을 얻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지역구에 내려가야 하는 데다, 워싱턴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매일같이 자정 무렵까지 일하고 새벽같이 출근하는 마당에 하루 네댓시간 잠만 자려고 월 2백만~3백만원의 거금(□)을 월세로 부어넣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다. 이 금액이면 미국 의원들 월 급여의 15~20%에 해당한다.

킹스턴 의원은 굳이 비용 문제 때문에 집무실 기거를 택한 것은 아니다. 그는 과거 3년간은 워싱턴 근교의 한 아파트에 세들어 살았다.

그러나 밤 늦도록 일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한 시간여 운전을 해 잠만 자고 새벽같이 뛰쳐나오는 생활은 그에게 피곤함과 외로움을 동시에 안겼다.

그는 차라리 눈에 익숙한 책과 자료가 빼곡하게 들어찬 집무실 간이침대에서 자고 이른 아침 의원회관내 체육관을 찾아 여유있게 샤워하는 맛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킹스턴 의원 같이 하루 24시간 의사당을 떠나지 않는 정치인은 모두 20여명에 이른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숨겨둔 침대 코커스' '집없는 천사들의 모임' '소파에서 밤을 새는 무리들' 등으로 부른다.

미시시피 출신의 5선의원인 진 테일러(46)하원의원도 집무실 기거파의 일원이다. 그는 일상적인 의정활동은 물론 한달에 1만5천통이 넘게 쇄도하는 E-메일과 편지 및 팩스를 받고 이에 일일이 답하려면 거의 밤을 지새워야 할 지경이라고 말한다.

이젠 집무실 뒷방에 갖춰놓은 야전침대에서 잠드는 데 익숙해진 테일러 의원이지만 "불과 3m 떨어진 곳에서 카펫 청소하는 요란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코를 골 수 있기까지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 술회한다.

현재 하원 공화당 원내총무를 맡고 있는 딕 아미 의원 역시 정치 초년병 시절 의원회관 체육관에서 기거하다 당시 하원의장 팁 오닐에 발각돼 핀잔을 받고 쫓겨난 적이 있다.

공화당의 마크 샌포드 의원은 뉴트 깅그리치가 하원의장으로 있을 당시엔 이따금씩 '홈리스 의원' 들을 불러모아 식사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는 등 낭만이 있었으나 지금의 의회 지도자들은 대체로 의원 품위문제를 거론하며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