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새 풍속도] 말보다 화끈한 '비주얼 국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나흘째를 맞는 국정감사에서 신(新)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정보화의 대세를 반영한 듯 멀티비전.비디오테이프와 디스켓을 이용한 질의 등 국감의 시각화가 첫 손가락에 꼽히는 흐름.

건설교통위의 서울시 국감(지난달 29일)에서는 의원들의 추궁과 피감기관의 맞대응 답변이 모두 영상매체로 이뤄지는 진풍경을 낳았다.

조진형(趙鎭衡.한나라당)의원이 "천호대교 교각이 손상돼 본체를 잠식했다" 며 방송사측과 함께 촬영한 장면을 비디오로 틀어주며 추궁에 나섰다.

이에 고건(高建)서울시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보다 현장 모습으로 직접 보여주겠다" 며 촬영해 두었던 7분짜리 영상물을 틀었다. 전날 오후 6명의 스킨스쿠버들과 전문가 1명을 동원, 수중촬영해 놓았던 것이다.

또 이재창(李在昌.한나라당)의원은 감사장 안에서 장애인 도로 보행의 어려움을 담은 영상물을 대형 멀티비전으로 상영했고, 문화관광위의 남경필(南景弼.한나라당)의원은 국정홍보처 공익광고를 TV로 틀어주며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각 감사장에서는 자주 소등(消燈)해야 했다.

산업자원위의 김칠환(金七煥.자민련)의원은 피감기관별 질의주제와 신산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 등 연구결과를 디스켓에 담아 배포했고, 환경노동위의 이미경(李美卿.무소속)의원은 감사장 복도에서 토사채취로 망가진 1백50개 산(山)의 사진전까지 개최.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의 정호선(鄭鎬宣.국민회의)의원은 시간 단축을 위해 아예 E메일로 질의.답변을 하자는 취지의 법개정도 추진 중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데다 15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임을 의식한 '졸업반 신드롬' 도 감지됐다.

문화관광위원장인 이협(李協.국민회의)의원은 위원장의 경우 질의를 않는 관행과 달리 위원장 석에 다른 의원을 앉혀놓고 위원석에서 질의를 하는 열성을 보였다.

중앙일보 등의 의원평가가 국회 속기록을 정밀분석하고 있기 때문인 듯 질의시간에 쫓긴 대부분의 의원들은 "못다한 질문도 꼭 기록에 남겨달라" 고 주문. 뻥튀기 질의에는 여야가 없었다.

총선을 앞둔 몸조심도 눈에 띄었다. 재경위 술자리 회식사건이 질타를 받자 농림해양수산위의 김영진(金泳鎭)위원장은 회의시간 지키기, 도시락 점심, 피감기관 신세 안지기 등 7대 수칙을 만들었다.

그러나 의원수 30명인 건교위 등 대부분의 상위에서는 10시간 질의에 답변은 1~2시간에 불과하고, 중복질문도 마다하지 않는 등 구태를 벗지 못하는 모습도 있었다.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