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세 아이 첫 책 고르기] (상)오감을 자극하는 놀이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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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쏙쏙 그림책』(전9권)
편집부, 아가월드, 각권 7000원

『아기 헝겊 책』(전4권)
편집부,애플비,각권 2만4500원

『고미타로 아기놀이책』(전3권)
고미 타로 지음,문학동네어린이,각권 5500원

『스팟의 날개책』(전15권)
에릭 힐 지음,한국프뢰벨,각권 8000원

셀 수 없이 많은 그림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젖먹이 아기들의 책은 많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신기한 때인데 말은 못하고 궁금한 것은 많고, 알고 보면 아기들도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게다가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엄마들조차 ‘요즘 이 책 안 들여 놓은 집 없는데, 이 집은 정보가 늦네?’ 하는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말에는 그만 맥을 못 추고 수십 권짜리 전집을 덜컥 들여놓고 말죠. 미처 아기 그림책에 대해 고민하기도 전에 말이에요. 이 때문에 유독 아기그림책 시장은 단행본 출판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그 결과 초보엄마들의 선택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간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0∼3세 아기 그림책을 단행본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해요.

아기들은 만져보고 빨아보는 행동으로 사물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무엇이든지 입으로 가져가는 아기들에게 아무 책이나 줄 수는 없잖아요? 튼튼해야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안전해야죠. 대부분의 아기 그림책들이 딱딱한 종이에 굳이 코팅을 한 까닭도 이 때문이에요. 그 가운데서 단지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들의 촉감을 자극하는 책 몇 가지를 골라 볼까요.

『느낌 쏙쏙 그림책』시리즈는 물건 하나하나를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손수 만져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아기들이 사물에 대해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물건들을 하얀 바탕 위에 올려놓았죠. 여기에 동물들의 부드러운 털, 오렌지의 오톨도톨한 느낌, 보들보들한 비단의 감촉, 찐득찐득한 젤리의 느낌까지 손끝으로 느낄 수 있으니 촉각으로 느낌을 전달받는 아기들은 사물의 특징을 더욱 또렷이 기억할 거예요.

『아기헝겊 그림책』 시리즈는 각각 나비·거북이·무당벌레·개구리 인형처럼 만들어졌어요. 푹신푹신한 미니쿠션 같기도 한데 가만…, 날개를 만지니까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네요. 아기들이 귀를 쫑긋 세우겠죠? 조그만 인형을 원하는 곳에 붙였다 뗐다 할 수 있고, 거울도 붙어있어 내 얼굴이 책 속 그림의 한 부분이 되고요. 머리를 꾹 눌렀더니 삑 삐빅! 어머머, 대체 이게 책이에요? 아니면 장난감이에요? 이런 특징 때문에 헝겊그림책은 아기들의 청각과 시각, 촉각을 자극하는 데는 그만이죠. 거기에 열어보고, 떼어보고 하는 활동이 필요한 그림책이라 아기들의 근육을 발달시켜 주고요. 아무거나 입에 갖다 대서 걱정이 된다고요? 안심하세요! 빨아도 아기들에게 전혀 해롭지 않대요.

이처럼 아기들에게 책을 주려는 어른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재미난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구멍을 뚫어 손가락을 넣어보게도 하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하기도 해요. 이런 노력은 아기들의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책으로 옮겨가게끔 하려는 것이죠.

『고미타로 아기놀이책』은 단순하면서도 친근한 캐릭터와 부드러운 색의 깔끔한 조화가 돋보이는 책이에요. 고미타로는 그 어떤 화가와도 차별화될 만큼 자신만의 독특한 색감을 보여줘요. 명도와 채도를 일부러 조금씩 낮춰 살짝 물을 뺀 듯한 느낌에 극단적인 색을 배치하지만 거부감이 없죠. 이 책에는 구멍까지 뻥 뚫려 있는데,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아기가 손가락을 집어넣는 순간, 아기손가락은 더 이상 손가락이 아니에요. 고양이의 꼬리가 되어 살랑살랑, 카멜레온의 혀가 되어 날름날름, 새의 날개가 되어 파드닥파드닥 움직이는 마술에 걸리게 되니까요.

이렇게 아기들이 그림책의 독자가 아니고 그림책의 주체가 되어 놀 수 있도록 배려한 놀이그림책은 『스팟의 날개책』시리즈와 같은 형태로 발전합니다. 이 책의 작가 에릭 힐은 아기들의 심리를 무척이나 잘 꿰뚫어 보았어요. 호기심에 못 이겨 저지레하는 아기들에게 ‘대신맨’ 역할을 할 장난꾸러기 스팟을 탄생시켰거든요. 이 시리즈는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 기세를 몰아 100여 나라에서 출판돼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대체 그 비결이 뭘까요? 집중력이 약한 아기들이 소화할 수 있는 짧은 문장과 수시로 바뀌는 장소 설정, 아기들이 좋아하는 동물 친구들의 등장도 한몫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숨바꼭질하듯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내는 들춰보기 그림책 형식은 아이들에게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아요.

내 아기에게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 싶겠지만, 좀 진정하고 따져 보자고요. 이제 막 세상으로 걸음을 뗀 어린 아기들에게 과연 수백 권의 책이 필요한 걸까요? 무엇이든지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 아기들에게는 그것보다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엄마의 눈빛, 함께 놀아준 시간이 그 어떤 책보다도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허은순(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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