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정감사 이제는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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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연례적으로 치러지는 국정감사가 올해에도 진행 중이다. 초반부터 정운찬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 위증, 4대 강 개발을 갖고 여야 간 기싸움을 하고 있으니 행정의 난맥상을 파헤쳐 경종을 울리는 송곳감사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우리 국회는 거의 일년 내내 국회를 열어 법안심사와 정책질의로 행정부를 감독하면서도 국정감사는 별도로 실시한다. 올해 초에도 미디어관련법으로 여야 간 충돌을 하느라 한동안 국회를 공전시키고 이제 때가 되니 국정감사는 어김없이 실시한다.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은 이 기간만 되면 비상이 걸린다. 산더미 같은 요구자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새워 만든 이러한 국감자료들이 과연 제대로 검토되는지 의심스럽다.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을 방문하면 그 자료들이 복도 한쪽에 포장도 안 뜯긴 채로 수북이 쌓여 있거나 나뒹굴어 다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올해 국정감사의 경우 지식경제위원회같이 산하기관이 많은 위원회는 20일 동안 38개 기관을 방문하며 감사할 계획이다. 외교통상위원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해외공관감사를 4개 반으로 해 18개 공관을 감사한다고 한다. 감사원이 1개 기관을 대상으로 10~20명이 2~3주간 감사를 하는 것에 비교하면 수박 겉핥기보다 더한 얼치기 감사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 보니 외유를 돌면서 그저 호통이나 치는 감사라고 폄하 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각 국회의원들이 질문하며 내놓는 자료들도 그 내용을 뜯어보면 언론에 이미 보도된 내용이거나 알맹이 없이 요란한 수치 분석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감사원이 이미 지적한 내용을 재포장해 마치 본인이 지적한 것처럼 대상기관을 질타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한 건 폭로 식으로 정부기관을 흔들어 놓고 언론보도 자료를 사방에 뿌려놓으면 언론들은 그대로 받아서 확성기처럼 보도한다. 국정감사가 점점 한건주의 이벤트성 행사화하고 있다. 그나마 일부 의원들이 행정의 현장을 발품 팔아 공직자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문제점과 개선대안을 제시해 호평받는 경우도 있어 다행이다.

증인이나 참고인 채택에 있어서도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엇갈려 시시비비가 많다. 무작위로 많은 증인이나 참고인을 채택해 국정감사장에 끌어낸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하거나 질문 한두 마디 하고는 그만이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조금만 업무와 연관이 있다 하면 그 기업의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려 한다. 그러면 그 대기업으로부터 증인 명단에서 제외해 달라고 많은 로비를 받는다.

국회가 국정감사권과 국정조사권을 다 가지고 있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특정사안이 발생하면 국정조사권을 가지고 위원회를 구성해 청문회를 열어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국정조사로 다루기는 어려운 사안이나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감사청구권을 활용해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하면 된다. 2003년에 국회법을 개정해 만들어진 감사청구권은 바로 이러한 전문기관으로 하여금 객관적인 감사를 통해 국회의 대정부 견제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감사청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감사 건수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국정감사 폐지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때라고 본다. 평상시에는 상임위원회에서 정책질의답변을 통해 일상적인 문제점은 해결해 나가고 복잡한 사안은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심도 있는 조사를 하면 된다. 물론 국정감사권 폐지는 헌법 개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마침 국회에서 헌법 개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 사항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국회가 국정감사권을 가지고 행정부처 공무원이나 산하기관 임직원들을 ‘기합’ 주는 재미에 안주하기에는 그 비효율이 너무 크다.

편호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전 감사원감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