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난 무방비 대학실험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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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플라스마 실험실 폭발사고는 대학 연구실의 안전불감증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대학 실험실들이 안전사고에 무방비한 상태라는 지적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지만 대책을 소홀히하다 결국은 실험자가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폭발물 실험을 하는 장소의 실험장치나 인력의 안전관리에 아무런 대책이 없었으니 사고를 자초한 셈이다.

'대학 실험실에서야 설마' 하는 안이한 태도가 값비싼 실험장비와 함께 귀중한 연구 인력까지 잃는 사태를 불러오고 말았다.

대학의 연구력 증대 노력과 산.학협동 등으로 연구활동이 활성화되면서 각종 위험물질을 다루는 실험이 늘고 있지만 안전의식은 과거의 일반실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실험장비 확보에 급급할 뿐 안전조치는 뒷전이다.

비교적 여건이 낫다는 대학조차도 인체에 손상을 줄 수 있는 화학물질과 실험장비가 좁은 공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상태지만 안전수칙 하나 제대로 걸려 있는 곳이 없다.

외국의 경우 실험대마다 환기통을 설치해 증발된 화학물질이 실험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지만 우리는 유독성물질을 다루는 실험에서도 이같은 장치는 없다.

여건이 이렇다 보니 실험자들은 각종 사고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다.

서울대가 올해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실험실 안전사고를 목격했다고 한다.

또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이 서울대 의대 등 10곳의 실험실을 조사한 결과, 6곳에서 치사율이 높은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쥐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태라면 대학실험실은 언제 또다시 인명피해가 날지 모르는 안전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교육부와 각 대학은 서울대의 이번 사고를 교훈삼아 대학실험실의 안전실태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말로만 안전관리 지시를 내리고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실험실별로 위험요소를 파악해 안전수칙을 마련하고 안전교육을 철저히 실시하며, 불시에 안전점검을 하는 등 상시 안전관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인체에 위험한 화학물질과 중금속 등을 다루는 실험실에 대해서는 안전담당자를 두는 등 특별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대학들이 실험실뿐 아니라 다른 시설의 안전관리와 환경의식도 점검하고 개선하기를 바란다.

대학들이 중금속, 심지어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실험 폐기물을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고 마구 하수구로 흘려보낸다는 지적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대학들은 이번 사고를 큰 경종으로 받아들여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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