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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세계화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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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글을 부족 문자로 채택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3명의 현지인을 만났다. 모두 대학을 나왔고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한글 보급에 대한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찌아찌아족이 사는 부톤섬 바우바우시의 유일한 언어학자인 무크민. 술라웨시 주도 큰다리에서 부톤섬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기 위해 기다리던 중 그가 “한국인이냐”고 말을 걸었다. 짧은 머리에 눈이 부리부리했다. 군인으로 착각하고 경계를 했다. 그는 오해하지 말라며 자기 소개를 했다. 바우바우시 기획국장을 맡고 있으며 한글 도입을 위해 훈민정음학회 관계자들과 협의까지 했던 당사자라고 했다. 큰다리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는데 현지 부족어에 일가견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웬 떡이냐 싶었다.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적절한 취재원을 만났으니 반가울 수밖에.

4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가며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그는 한글의 과학성에 누누이 찬사를 보내며 말미에 문화 얘기를 꺼냈다. 인도네시아 대도시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 등 한류 바람이 분 지 오랜데 정작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는 부톤섬에서는 한국 문화 접촉 기회가 없다는 거였다. 이후 취재 과정에서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바우바우시 전체에서 인도네시아어로 된 한국 관련 자료는 없었다. 한글 보급 2개월이 넘도록 찌아찌아족 고등학생들은 교과서도 없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을 정도다.

그는 찌아찌아족 한글 채택이 한국어 보급과 한국 문화에 대한 현지인의 공유로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시 공무원으로 한국과의 교류 확대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온화한 미소가 괜찮았던 피오니 여사장을 만난 건 부톤섬에서 큰다리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였다. 화교인 그는 리순화라는 중국 이름도 갖고 있었다. 그는 큰다리에서 첫째 가는 소매유통망 업체 사장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그에게 혹시 한글 보급을 확대할 방안이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답은 이랬다.

“한국 상품이 들어오면 한글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커질 겁니다. 현재 큰다리시와 부톤섬에 한국 상품을 취급하는 판매점이 거의 없다는 걸 한국 기업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찌아찌아족 한글 채택을 계기로 삼성이나 LG의 전자제품을 취급하고 싶다고 했다. 부톤섬의 최대 도시인 파사르와조의 구청장 마구스는 큰다리에서 자카르타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만났다. 옆자리에 앉았던 그는 현지 최대 소수민족이자 유일하게 문자를 가진 올리오족 출신이었다. 그는 한글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올리오족 글자를 사용했던 찌아찌아족이 하루아침에 한글을 도입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한데도 그는 조심스레 한마디 건넸다. “사실 부족 문자가 있지만 컴퓨터에 입력하기 어려워 고민이 많습니다. 정보화 시대에 맞지 않는 거죠. 부족 원로들을 잘 설득하면 우리라고 한글을 채택하지 말란 법은 없지요.” 한국 정부, 그리고 앞으로 확대 설치될 세종학당 관계자들이 꼭 새겨 들었으면 한다.

최형규 홍콩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