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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타협의 역사와 순수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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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전에 한국을 연구하는 한 미국 학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영어에는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코리안들을 통칭할 수 있는 '코리안'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러나 한국말에는 그런 단어가 없다.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조선 사람', 미국에 살면 '재미교포', 일본에 살면 '재일교포', 중국에 살면 '조선족', 중앙아시아에 살면 '고려족' 등 다양한 호칭이 붙는다." 이들을 모두 "한국 사람"이라고 부르자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그렇다면 왜 한국말에는 코리안에 준하는 말이 없나?

'코리안'에 딱 맞는 우리말 없어

이는 우리의 용어가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한말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조선 백성'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이 서서히 몰락하면서 당시의 식자들과 지도자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섰다. 대원군.이항노 등은 '위정척사'의 기치하에 수백년을 이어온 주자학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애썼으나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유일한 방법은 기존의 선진 강대국들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델을 선택하고 따르는 것이었다. 우선 김옥균.유길준 등 조선의 개화파가 모델로 선택한 것은 일본이었다. 당시 유색인종 국가로 유일하게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일본이 모델로 채택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한다.

그러자 많은 개화파 인사는 일본 대신 미국을 모델로 채택하였다. 이상재.이승만.윤치호 등 수많은 개화파의 지도자가 을사보호조약을 전후로 '미국의 종교'인 기독교로 개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이동희 같은 인물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러시아혁명에 성공하여 막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의 코민테른과 접촉하면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인다.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를 내세운 마르크시즘은 조선의 독립을 꾀하는 많은 사람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이들은 20세기 전반부를 치열하게 살면서 새로운 코리안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애썼다. 해방 이후 이들은 한반도에서 격돌하게 된다. 남한에서는 친일 개화파의 잔존 세력과 친미 기독교주의자들이, 북한은 친소 공산주의자들이 새로운 국가를 세운다. 그러나 남북한의 주도 세력은 각기 사분오열되어 있는 사회를 정치적.이념적으로 통합하기 위하여 민족주의를 주창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채택된 것이 단재 신채호의 민족주의다.

단재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실체를 국가체제나 주권국가가 아닌 종족적.인종적 실체로 파악했다.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단일 민족' '단군의 자손'이란 개념은 민족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역사가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국가는 없어져도 남을 수 있는 민족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그는 뤼순(旅順)감옥에서 무정부주의자로 생을 마쳤다).

그 결과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남한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강력한 민족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북한에서는 체제가 붕괴되고 국제적으로 고립됨으로써 이제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은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민족주의인 주체사상밖에 없게 되었다. 반면 남한은 정치.경제 발전의 성공으로 개방화.국제화.세계화의 이념이 자칫 폐쇄적으로 흐를 수 있는 민족주의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하였다.

지난 100년간 수많은 타협 존재

이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타협이 있었다. 지난 100년 동안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조선, 아니 한국의 근세사는 곧 다양한 체제와 이념, 종교와 사상의 타협의 역사다. 그리고 성공한 역사다. 그것이 '순수'한 역사일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의 잣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역설적인 것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남한에서도 폐쇄적인 민족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에 회의적이면서 모든 '외세'를 배척하는 폐쇄적인 민족주의로 무장한 세력이 한국의 진보 세력이며 이들의 선봉에 선 것이 386 세대다. 또 한번 우리 역사의 시련기.방황기가 시작되려는가 보다.

함재봉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