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자동차 10년 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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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은 옛것이 대접받는 나라다.

오래된 것일수록 값이 나간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무슨 물건이든 쉽게 버리지 않고 고장나면 고쳐 쓰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다.

낡은 것이라도 갈고 닦으면 제값을 받는다.

주말에 마을 공터에서 열리는 중고품 시장인 부트 세일 외에도 상설 중고품점들이 많다.

여기서 갖가지 생활용품을 구입해 자기 취향에 맞게 수리해 사용한다.

자동차도 중고차가 주류다.

영국 자동차 번호판은 제조연도에 따라 알파벳 글자를 순서대로 붙인다.

아라비아 숫자 0, 1, 2와 혼동을 일으키는 I, O, Q, Z를 제외한 22개를 사용한다.

올여름 출고된 자동차는 T자로 시작한다.

그런데 도로상에서 T자 번호판을 붙인 신차 (新車) 와 중고차가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시 말해서 공장에서 막 나온 차와 22년 된 차가 함께 달리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자동차를 이처럼 오래도록 탈 수 있는 것은 자동차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가정집 차고를 들여다보면 자동차 정비용 공구들이 고루 갖춰져 있다.

웬만한 고장이면 스스로 고친다.

아버지는 평소에 자식에게 자동차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고, 자신이 사용하던 공구를 자식에게 물려준다.

운전과 정비는 별개라고 생각하고 작은 고장에도 정비공장을 찾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영국인들이 오래 된 차를 즐겨 운전하는 것은 자동차는 생활용품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사치품이 아니다.

자신의 생활규모.수입에 맞는 실용적인 자동차를 구입해 기계로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닦고 기름치고 조이면서 사용하는 것이다.

선진국의 자동차문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자동차가 3.8년마다 주인이 바뀌고, 8.1년이 지나면 폐차된다.

일본 (9.5년.18년) , 미국 (7.4년.16년) , 프랑스 (8년.17년)에 비해 훨씬 빠르다.

자동차를 남에게 보이기 위한 물건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산 자동차는 평균 50만㎞를 달릴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대부분 그전에 폐차되고 만다.

과소비에다 국부 (國富) 의 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IMF 외환위기를 맞아 지난해 1월 시민운동으로 출발한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 이 차츰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고 한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자동차회사들은 부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정부는 오래 된 차에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등 자동차 오래 타기 운동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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